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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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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김연주 기자]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대본을 본다. 깨어 있을 때는 물론 자다가 일어나서도 대본을 펼친다. 나이가 드니까 더 그렇다. 배우가 대사를 잊어버리면 안 되지 않나. 그게 나의 노력이라면 노력이다.”

배우 윤여정이 돌아온다. 영화 ‘미나리’ 이후 3년 만이다. 윤여정의 스크린 복귀작 영화 ‘도그데이즈’는 성공한 건축가와 MZ 라이더, 싱글 남녀와 초보 엄빠까지 혼자여도 함께여도 외로운 이들이 특별한 단짝을 만나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갓생 스토리를 그린다. 김덕민 감독의 첫 장편 영화로 배우 윤여정, 유해진, 김윤진, 정성화, 김서형, 다니엘 헤니, 이현우, 탕준상, 윤채나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쟁쟁한 캐스팅으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개봉을 앞두고 TV리포트와 만난 윤여정은 “김덕민 감독을 믿고 출연하기로 한 작품이다. 제가 힘을 보탤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이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극중 윤여정은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반려견 ‘완다’와 노년을 보내는 ‘민서’ 역을 분했다. 어느 날 정 많은 MZ세대 라이더 ‘진우'(탕준상 분)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한층 성장한다. 두 배우의 세대 초월 케미스트리가 이 영화의 기대 포인트다.

윤여정이 출연한다는 자체만으로 관객들의 기대치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나리’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그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세대를 막론하고 시대의 어른으로 불리는 윤여정이 이번 작품에선 어떤 활약을 선보일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도그데이즈’는 오는 2월 7일 개봉 예정이다.

이하 ‘도그데이즈’ 배우 윤여정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3년 만에 관객과 만난다. 

김덕민 감독과 전작에서 배우와 조감독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때 함께 고생을 하다 보니 일종의 전우애가 생겼다.(웃음) 전해 듣기론 김덕민 감독이 19년 동안 조감독을 지냈다더라. 세상살이가 이렇게 힘들구나 싶었다. 그래서 입봉할 때 제가 맡을 배역이 있으면 꼭 출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약속을 ‘도그데이즈’로 지켰다. 

-성공한 건축가이자 청춘에게 힘이 되는 인물을 연기했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캐릭터 이름이 ‘윤여정’이었다. 이름부터 윤여정이니 잘 봐달라고 하더라.(웃음) ‘민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산다. 생각해 보면 먹고사는 게 다 똑같지 않나. 성공한 건축과의 삶 같은 건 잘 모르고, 그저 인물의 일상에 집중하면서 연기했다. 

-대중에게 알려진 윤여정의 모습이 많이 보이는 캐릭터였다.

대본대로 연기를 했는데 그렇더라. 해명하자면, 저는 절대 대본을 바꾸지 않는다. 김수현 작가와 드라마를 할 때부터 대본의 토씨 하나 바꾸면 안 된다고 배웠다. 작가들이 피와 땀을 흘리면서 쓴 글을 제 마음대로 바꾸면 되겠나. 대신 미련할 정도로 대본을 많이 보는 편이다. 읽다가 덮고, 다시 열어보고 또 열어본다. 그게 나의 노력이라면 노력이다. 암기를 잘하는 방법? 없다. 마르고 닳도록 외울 뿐이다. 대본을 옆에 두고 사는 게 연기에 도움이 된다. 대사를 보고 또 보면서 그 인물과 가까워진다.

-이번 작품만의 연기 공식이 있나?

이제 그런 게 어디 있나. 하하. 늘 하던 대로 했다. 배우마다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누군가는 걸음걸이까지 연구한다고 하는데, 저는 캐릭터의 삶을 생각해 본다. “내가 이 여자라면?”, “내가 이런 상황에 놓이면?”이란 가정을 해봤다. 

-탕준상 배우와 세대를 아우르는 케미가 돋보였다.

이제 성별이 없는 나이가 돼서 그런 거 같다. 웬 늙은 여자가 그렇게 행동하면 징그럽고 싫지 않겠나. 제 나이가 올해 77살이다. 갓 태어나서 특정 나이가 될 때까지 성별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나이가 들면 성별을 상실한다. 비로소 사람 윤여정이 됐다.(웃음) 이대로 좋다.  

-반려견과 인간의 관계를 그리는 작품이다. 비슷한 추억이 있는지 궁금하다.

반려견을 키운 적이 있었는데,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았다. 한 번으로 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자식을 하나 더 키우는 셈인데 지금 어떻게 키우겠나. 그래서 극중 ‘민서’의 선택이 관용이라 생각했다. 반려견을 애지중지 키웠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된 거다.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고 더 잘 키워줄 사람에게 보내주는 그림이 아름다웠다. ‘민서’가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현명한 결정인 거 같다.

-앞서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무대에 오르며 해외까지 주목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기분 좋은 사고’다. 앞서 봉준호 감독이 문을 두드려준 덕분이다. 돌아보면 여러 운이 작용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첫 영화 ‘화녀’로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땐 세상이 내 것이 된 줄 알았고, 스스로 연기를 너무 잘한다고 착각했다. 수상의 영광은 잠시라는 걸 알지 못했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상이 주는 허망함을 깨달았다. 많은 걸 깨달은 나이에 상을 받아서 더 감사하다. 하지만 감사하고 기쁜 일 정도로 정리하기로 했다. 너무 얽매이면 일상을 살 수 없을 거다.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하자면?

조언은 공자님 같은 분이 하는 거다.(웃음) 할리우드 무대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CF에서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것을 하다 보면 세계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까. 인생이 계획처럼 되는 게 아니다. 그러니 한 방향을 향해서 무언가를 하기보단 자기 것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윤여정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제가 상 받은 것만 얘기하는데 출세한지 얼마 안 됐다. 그전까진 줄곧 힘들었다. 사는 게 힘든 거라 생각해서 크게 불평을 하지 않았을 정도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항상 당당했냐고? 힘들다고 비굴할 필요는 없지 않나. 

-역시 솔직하고 시원하다.(웃음) 

늘 솔직했다.하하. 솔직함이 자랑은 아닌 거 같다. 자칫 누군가에게 무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무례하지 않은 솔직함에 대해 생각한다. 품위 있게 늙고 싶다. 더불어 저한테 유머라는 게 있다면, 사는 게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그냥 웃기로 했다. 멀리에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지 않나. 내가 하는 모든 농담이 그렇다. 모든 걸 즐겁게 생각하기로 했다. 

-연기한지 60년이 다 돼간다. 천직이라고 생각하나?

지금은 그렇다. 한때는 배우로서 타고난 것도,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천직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연기를 하게 됐다. 연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배우로서 지키고 있는 신념이 있나?

생계유지를 위해 연기했던 적이 있다. 돈을 벌려면 뭐든 해야 하는데 결이 비슷한 캐릭터를 연달아 맡게 됐을 때 참 속상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65살 이후에 저만의 기준을 세웠고 지켜나가고 있다. 비슷한 연기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한다. 

-‘도그데이즈’에서 ‘민서’가 ‘진우’에게 했던 것처럼, 청춘들에게 한 마디 전하면? 

“버티는 것밖엔 답이 없다. 인생이 그렇다”. 제가 대중에게 각광을 받은 지 고작 2~3년이 됐다. 끈질기게 버티고 살아남아서 이런 날을 맞이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살면 작은 일에 감사해지는 날이 온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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