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이 SK 직원들에게 벌이는 ‘실험’에 얼음장 된 곳
시스템 IC 파운드리 이직 권유
반도체 생산 부문 불황 지속돼
‘동종업계 이직’ 이례적인 지원
최근 SK하이닉스가 호실적에도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는 계열사인 시스템 IC 파운드리 불황으로 권고사직을 내리는 것이 아닌 동종업계로 이직을 권유하는 파격적인 실험을 이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SK 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흑자 전환을 성공시켜 분위기를 반전시킨 후 2분기 연속 영업이익을 내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SK하이닉스가 공시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분기 영업이익은 직전 분기보다 734% 대폭 늘어난 수치다. 지난 2022년 하반기부터 시작한 반도체 업황 침체기를 맞이한 SK하이닉스는 4분기 내리 적자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보이기도 했다. 그 이후 2023년 4분기 들어서 긴 암흑을 뚫고 흑자로 돌아섰다.
SK하이닉스는 이번 공시를 통해 “D램의 실적뿐만 아니라 낸드 역시 흑자 전환을 달성해 상당한 의미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D램은 반도체 기억소자로, 전기를 주입한 상태에서도 일정한 주기마다 동작이 추가되지 않으면 기억된 정보가 삭제되는 랩을 뜻하며 주로 컴퓨터 부품으로 많이 쓰인다. 낸드란 낸드 플래시의 준말로 메모리 반도체의 한 종류로 D램과 달리 전기 없이도 데이터를 기억하는 부품으로 주로 스마트폰에 사용된다.
SK하이닉스의 주력 상품인 전 세계적인 D램 가격 상승세 또한 회사의 호실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메모리 업계가 지난해(2023년)부터 지속해서 이어온 감산 효과로 인해 인공지능(AI) 서버에 투입할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D램과 낸드 가격이 하락세에서 상승으로 급변하기 시작했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D램 ASP(평균 판매단가)는 직전 분기 대비 최대 20% 뛰어 올랐고, 낸드는 22~28%가량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 힘입어 SK하이닉스가 선두 주자로 끌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실적이 크게 개선된 셈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4세대 HBM(HBM3)을 독점하여 공급하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2분기 새로운 HBM 생산을 예고해 자리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측된다.
인공지능 반도체 덕분에 깜짝 실적을 낸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자회사인 시스템 IC의 분위기는 모기업과 사뭇 다르다.
파운드리 업황의 부진이 더욱 길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지난해(2023년)에는 무급 휴직 희망자를 받더니 올해는 동종업계로 이직을 허용하기로 선언한 것이 확인됐다.
시스템 IC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당사는 업계 최초로 국내 동종업계에서 활동 중인 국내 파운드리 회사 DB하이텍으로 이직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밝혔다. 이 배경엔 SK 내 키 파운드리, SK실트론 등 관련 계열사로 우선 인력을 재배치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동종업계로 이직을 허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 시스템 IC 측은 “직원에 부담이 가하는 권고사직이나 희망퇴직을 최대한 지양하고, 임직원의 커리어 연장을 지원하기 위해 동종업계로의 이직의 길을 열어주기로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시스템 IC는 자사의 임직원 가운데 이직 희망자를 우선 모집하고, DB하이텍은 해당 인원에 ‘2년’ 경력을 인정해 주기로 협상이 체결됐다.
통상 반도체 업계는 첨단 산업으로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에 정보 유출에 민감하여 임원은 물론, 평사원까지도 ‘동종업계 이직’을 수년 동안 금지하는 계약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양사는 이번 협상에 한시적으로 동종업계로 이직할 수 없는 조항을 적용하지 않고 이직할 수 있도록 지원함을 밝혔다.
현재 파운드리 산업 가운데 인공지능 관련 부문을 제외한 스마트폰을 비롯해 자동차, PC, TV용 칩 주문 생산의 수요가 매우 저조한 상황이다.
그중에서 특히 차량용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구동칩을 제조하는 레거시 공정인 ‘8인치 파운드리’ 상황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시스템 IC는 현재 중국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과 팹리스 고객사에 물량을 주문받고 있는데 수요 물량이 대폭 쪼그라들면서 파운드리 가동률을 50%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
한편 일각에선 기술 유출에 민감한 SK하이닉스의 이번 이직 지원이 매우 파격적이며 이례적이라고 설명한다.
SK하이닉스는 당사에서 미국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에 이직한 직원 A 씨 기술 유출 등으로 법정 싸움을 벌인 바 있다. 해당 싸움에서 재판부는 SK하이닉스가 A 씨를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A 씨가 알고 있는 정보가 유출될 경우 마이크론은 동종 분야에서 채권자(SK하이닉스)와 비슷한 사업 능력을 쌓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상당 기간 줄일 수 있지만 채권자는 유출된 기술 경쟁력을 상당 부분 훼손당할 것으로 생각되는 점, 정보 유출이 발생할 경우 원상회복은 사실상 일어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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