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제치고 국내 최고 부자였죠…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입니다”
아모레퍼시픽
태평양그룹 동백기름
1주당 400만 원 선 기록
증권가에서 아모레퍼시픽에 대한 보고서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KB 증권은 아모레퍼시픽의 1분기 연결 매출 9,694억 원, 영업이익 521억 원으로 전반적인 기대치에 부합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3년 만에 본업이 증가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하며 투자 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17만 원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모레퍼시픽은 K-뷰티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화장품 기업이다.
대한민국의 화장품 회사 중 오랜 기간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사드 사태 이후로 LG생활건강에 밀려 1위 자리를 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아모레 퍼시픽은 한국 뷰티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기업으로 꼽힌다. 아모레 퍼시픽은 7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기업으로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지 한 달이 채 안 됐을 때 설립됐다.
아모레 퍼시픽의 시초는 창업주인 서성환의 어머니인 윤독정 여사의 동백기름부터 시작되었다. 윤독정여사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부터 동백기름을 만들어 팔았다.
당시 ‘창성 상점’이라는 가게에서 팔던 동백기름을 아들인 서성환이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설립해 그 유지를 이어간 것이다.
이후 메로디크림과 ABC 포마드를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후발주자로 내놓은 코티분 역시 한국 화장품 시장의 판을 뒤집었다는 평이 이어질 정도로 시장을 주름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1964년 ‘오스카’라는 브랜드로 첫 해외 수출을 시작한 이후 ‘아모레’라는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메이크업 캠페인, 파운데이션, 미용지, 한방 화장품, 지정 체인샵 등 대한민국 화장품 역사에서 ‘최초’의 타이틀을 모조리 쓸어갔다.
1970년대에는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에 현지 지사를 세워 높은 수익을 기록해 태평양화학공업을 상장시켰다.
이후 건설, 금융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며 태평양 그룹의 입지를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러 사업에 뛰어든 탓인지 그룹 내 채무가 늘어나고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 진출한 수입 화장품에 밀리기 시작해 유서 깊은 화장품 시장에서 약세를 보이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서성환 회장의 아들 서경배가 그룹 내 기획조정실장으로 취임하면서 구조조정, 사업 정리 등을 정리하며 지금의 아모레 퍼시픽이 탄생했다.
창업주로 알려진 서성환 회장은 한국 최초의 사외보이자 여성 교양지 ‘화장계’를 발간하고 1960년대 주부 인력을 ‘아모레’ 방문판매 사원으로 투입하는 등 저돌적인 경영 행보를 보여줬다.
당시 방문판매직을 전쟁미망인들에게 제안해 여성 가장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회사와 직원이 서로 이득을 보는 구조를 만들어낸 사회적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로도 유명하다.
이후 아시아 최초의 화장품·장신구 박물관인 태평양박물관을 개관하는 등 불모지였던 국내 화장문화를 선도해 온 인물이다.
한때 아모레퍼시픽의 주가는 400만 원대를 웃돌기도 했다. 2014년부터 중국에서 밀려 들어온 유커가 아모레퍼시픽의 전성기를 이끄는 ‘대박 손님’이었다.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이 유커와 중국 현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매출 증가로 실적이 크게 개선된 것도 모자라 전년 대비 매출 52% 상승, 영업이익 25% 상승을 기록했다.
2014년 1월 2일 당시 아모레퍼시픽의 주가가 한 주당 100만 7,000원이었는데 동년 12월 30일에는 220만 원으로 두 배 이상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 인기를 증명했다.
이 무렵 주가가 너무 오르다 보니 신규 주주의 접근이 어려워 1:10의 액면분할을 결정하게 된다. 아모레퍼시픽의 액면분할 결정에 개미들이 모이게 되자 주주총회 결과 발표 당일 주가는 286만 원으로 마감하는 등 주식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액면분할로 인한 거래 정지일 직전일인 4월 12일에는 주가가 무려 384만 4,000원을 기록하고 액면분할을 마친 이후 거래가 재개되자 45만 원을 기록하면서 아모레퍼시픽은 당시 시가총액 24조로 코스피 시가총액 5위에 올라서는 엄청난 상승세를 보였다.
당시 故 이건희 회장을 제치고 국내 최고의 주식 부호로 알려지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런 상승세를 이어갈 것처럼만 보였다.
정부의 사드 결정이 없었다면 현재 아모레퍼시픽의 국내 입지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승승장구를 달리고 있던 아모레퍼시픽에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2016년 정부가 사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중국이 한한령으로 보복에 나서며 매출이 꺾이기 시작했다.
2016년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은 6조 6,976억 원, 영업이익 1조 828억 원을 기록했는데 1년이 지난 2017년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은 5조 1,238억 원, 영업이익 5,964억 원으로 각각 9%, 30% 감소하는 등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실적이 떨어지면서 당연하게도 주가도 내려갔다.
한때 400만 원을 자랑하던 아모레 퍼시픽의 주가는 사드 배치로 15만 원대까지 하락했다. 이후 코로나19의 여파로 아모레퍼시픽은 업계 전망이 안 좋아지면서 ‘400만 원 신화’의 이름을 잃게 됐다.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아모레퍼시픽은 ‘지금이 기업의 최전성기’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서성환 회장의 아들 서경배가 아모레퍼시픽을 이어받게 되면서 만든 브랜드가 한방 콘셉트의 화장품 브랜드인 설화수, 마몽드, 헤라, 라네즈, 이니스프리 등이다.
서성환 회장의 유지를 이어받은 듯한 행보를 보이는 서경배 회장은 “먼저 시작해 먼저 성공하라”라는 일념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최초의 타이틀은 모조리 휩쓸었던 아모레퍼시픽의 전성기가 다시금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서경배 회장은 실적 부진을 겪은 이후 ‘뉴 뷰티’를 변함없이 추진했고 “새시대 고객이 원하는 ‘뉴 뷰티’를 선보이자”며, “우리가 선보일 뉴 뷰티는 모든 존재가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며 그 잠재력에 주목하는 아름다움의 새로움 패러다임”이라는 정신으로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을 일궈냈다.
이어 중국 시장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북아메리카와 유럽 등 잠재력·성장성이 높은 신규 시장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모레퍼시픽은 늘 그렇듯 실적으로 성과를 증명했다.
지난 2022년 아모레퍼시픽이 미주에서’ 설화수’와 ‘라네즈’, ‘이니스프리’ 등 주요 브랜드가 성장을 거듭하며 전체 매출이 83% 증가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은 미주에서 1분기 80%, 2분기 105%, 3분기 35% 성장세를 기록했다. 일본 시장에서 역시 약 30%의 매출 증가를 만들어냈고 영향력을 점점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로 창립 79년을 맞은 아모레퍼시픽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때 대한민국의 ‘황제주’라고 불렸던 아모레퍼시픽이 다시금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한편, 서경배 회장은 아버지인 서성환 회장과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1991년 서성환 회장은 서경배 대표와 깊고도 잔잔한 이야기를 나누며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지곤 했다고 밝혔다.
이에 서성환 회장은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는 화장품 없는 자신의 인생은 아무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는 故 서성환 회장이 지켜오려던 아모레퍼시픽 그 자체를 상징하는 말로 볼 수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