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가문..JPG – 실시간 베스트 갤러리
시마즈(島津)는 중세 가마쿠라 시대부터 근대 메이지 유신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일본의 명문가다.
“시마즈 가문에 암군은 없다”(島津に暗君なし)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가마쿠라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1,000년 가까이 영지 이동이나 영지 몰수없이 한 영지를 통치한 시마즈 가문의 사례는 일본사는 물론 세계사에서도 극히 드문 일이다.
《《업적》》
몽골 1차 침공때 하카타 전투에서 맹렬히 저항해 원나라 장수를 화살로 저격에 성공. 때문에 여몽 연합군은 함대로 귀환했는데 그때 태풍에 수장당하게된다
몽골 2차 침공때 이키 섬 전투에서 또 다시 맹렬히 저항 끝에 섬을 탈환, 히라도 섬으로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다시 함대로 귀환한 몽골군은 또 다시 태풍에 수장당하게 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시마즈 요시히로는
사천성 전투에서 7천명의 병사로 4만명의 조명연합군을 말그대로 학살해버린다.
고니시를 구하기 위한 노량해전에서 난전을 유발해 이순신 장군 및 지휘부 장수들을 전사 시키고 유유히 빠져나간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시마즈 요시히로는 자신보다 10배 많은 병력의 도쿠가와 측 동군에 포위당한 상황, “적진으로의 퇴각”이라는 정신나간 돌격으로 빠져나가는데
질려버린 도쿠가와에게 인정받고 시마즈 가문은 유지된다.
1862년 일어난 시마즈 가문과 영국 함대간의 대결에서 영국 함대를 퇴각시킨다. 둘은 서로를 인정하고 교류를 시작한다
1868년 일어난 보신전쟁에서 구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의 선봉이 된다.
1869년 일본제국해군 창설을 주도했다
전후 ‘시마즈 공업’을 시마즈 가문의 당주가 시마즈 공업의 사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시마즈 제작소에 재직하던 다나카 고이치가 연성 레이저 이탈기법을 개발한 공로로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출처: 싱글벙글 지구촌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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