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사랑받던 정몽헌 제치고 회장된 정몽구, 이유 분명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명예회장
정주영 “정몽구 이름 빼라”
정몽헌·정몽구 형제의 난
재계에서 경영권 승계를 두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바로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자매 간의 갈등, 일명 ‘형제의 난’이다. 이 중 여전히 현재까지 회자하는 가장 유명한 형제의 난은 의외로 현대그룹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정주영과 함께 명실상부한 범현대가의 수장이자 대표적인 국내 재벌 총수 2세로 꼽히는 그는 어떻게 회장직에 오를 수 있었을까?
당초 정몽구 회장은 아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태어난 1970년 처음 현대에 입사해 현대자동차, 현대건설을 거치며 현장에서 역량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대자동차 서울사업소 부품과 과장으로 입사한 그는 현대건설 자재부 부장, 현대차 서울사업소 이사 등을 거치다 1977년 컨테이너와 H빔을 제조하는 현대정공의 초대 사장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정공의 초대 사장직을 맡은 그는 아버지인 정주영 회장에게 자신의 경영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컨테이너 시장의 주도권을 일본에서 뺏어오고, 현대 차량을 흡수·합병해 철도차량 부문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정몽구의 능력을 미리 알아보고 현대차를 그에게 넘겨주려고 했다고 전해졌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을 동생인 정세영 회장이 키운 이미지가 짙었으나, 정주영 회장은 이를 위해 갤로퍼 생산을 정몽구에게 맡겨 명분을 정몽구 회장 쪽으로 돌려세우기에 성공했다. 1995년 정몽구 회장은 정주영 창업주에게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현대차 회장직에 오른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정몽구 회장이 현대 정공에 입사한 시절부터 현대차 회장직에 오르기까지 엄청난 총애를 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더불어 정주영 회장의 후계자로 ‘정몽구’가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며 그의 회장직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재계에서는 정몽구 회장이 정주영 창업주의 총애를 받은 것을 두고 특혜 분양 사건으로 인해 정주영 대신 징역을 살고, 장자였던 정몽필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그가 명실상부한 현대가의 장자로 거듭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동생인 정몽헌과 정몽준이 쉽게 높은 직위를 얻어낸 것과 달리 일련의 사건들 이후 정몽구는 정주영 창업주에게 인정받은 점을 미루어 보아 다른 가족들에 비해 그에게 비치던 잣대가 까다로웠음이 추측된다. 그러나 외환 위기 이후 정몽구 회장을 향한 정주영 창업주의 총애는 끝이 났다.
이는 셋째 동생 정몽헌이 공동 회장으로 승격되자 그와 그룹의 패권을 두고 경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2000년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기업 역사상 최악의 경영권 다툼으로 꼽히는 ‘왕자의 난’이 발생한다. 정몽구 회장은 결국 현대그룹의 회장직에서 경질당해 그룹의 자동차와 제철 및 철도 등의 부분을 가지고 현대 기아자동차그룹으로 독립하게 된다.
당시 정주영 창업주는 ‘당장 그룹 회장에서 정몽구의 이름을 빼라’고 호통을 칠 정도로 정몽구 회장을 제외하는 후계 구도를 생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까지만 보았을 때 왕자의 난은 정몽헌의 승리, 정몽구의 패배로 귀결된다. 그러나 정몽구는 왕자의 난의 승자로 꼽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정몽헌이 현대그룹의 후계자로 단숨에 올라섰을 당시, 정몽준이 자신의 지분을 정리하며 현대중공업과 조선 분야를 가지고 이탈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룹의 상징이자 가장 알짜 사업으로 꼽혔으나 중공업과 조선 분야로 감춰졌던 건설과 전자 사업이 경영난에 빠졌다.
정몽헌은 두 회사를 결국 채권단에 넘기고 폭락한 종합상사와 금융 부분 및 상선, 대북 송금 사건이 터지며 정치적으로 엮여 고초를 겪었다. 정몽헌 회장은 이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정주영 창업주의 타계 2년 후 특검 수사를 받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에 따라 정몽헌 회장의 현대건설을 지난 2011년 정몽구 명예회장이 받아내며 재계 2위까지 그룹을 성장시켰다. 이와 더불어 현재까지 부채도 낮고 미래 가치가 풍부하고 탄탄한 기업 현대자동차의 성장을 주도해 오며 그룹 성장에 기여했다.
한편, 정몽헌 회장의 사망으로 정몽구-정몽헌 회장 사이의 화해는 이뤄질 수 없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헌 회장의 투신 직전까지도 이들의 사이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으며 서로 불편한 상황에 대면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동생 정몽헌 회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형제 중 가장 먼저 현대 사옥으로 찾아와 현장에서 시신 수습 과정을 책임진 사람은 형이었던 정몽구 회장으로 확인됐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20년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장직을 아들 정의선에게 물려주고 은퇴하며 명예 회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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