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게임 ‘페르소나 3’
아틀러스는 과거, 진여신전생등 JRPG계에서 알아주는 IP로 유명한 곳이였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아틀러스의 대표 IP하면 페르소나를 꼽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왜 주력 IP가 이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전 IP가 주력이 되었으며 개발력이 몰빵되어 있고 그만큼 좋은 평가를 받는것인가?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아 ㅈ됨 회사 망하게 생겼음 ㅅㅂ’
2004 – 2006년 당시 아틀러스는 타카라라는 완구회사의 자회사였는데, 타카라 산하에서 좋지않은 재정상태로 무너질 위기에 쳐해 있었다.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는 아래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야 너한테 게임 개발 하나 맡길게’
(하시노 카츠라, 페르소나 3,4,5의 디렉터이다, 당시에는 진여신전생 3 녹턴의 디렉터직과 아바탈 튜너2의 프로듀서직을 역임하고 있었음)
‘?? 먼데요’
‘이번에 페르소나 IP로 게임 하나 개발하려고’
‘그걸 ㅅㅂ 왜 나한테 말해요?’
‘회사가 무너지는데 물불 가릴거 같음? 아무튼 너한테 페르소나 3 개발 맡길거니까 알아서 잘해라’
‘ㅇㅋ;;’
‘아 맞다 그리고 이거 너한테만 말해주는건데’
‘??????’
‘이게 우리 회사 마지막 게임이 될 것 같다’
문제는 하시노 카츠라는 페르소나 1,2를 제작했던 개발진도 아니였고 대뜸 아틀러스에서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며 페르소나 개발진 수뇌부에 앉혔다는 것이다.
기존 1,2가 발매되었던 페르소나 IP는 진여신전생과는 반대로 여신전생의 IP를 활용해서 라이트한 팬들을 유입시키기 위해서 제작한 IP였지만 아직도 진여신전생의 매니악한 면은 남아있었다.
하시노 카츠라는 이 부분을 캐치하여 자신이 그동안 개발에 참여했던 진여신전생 시리즈와 기존 페르소나 게임과는 완전히 차별화되는 게임을 만들기로 마음먹는다.
‘개발진은 또 어떻게 모아야 하냐;;’
‘일단 기존 게임의 틀을 타파해야하니 젊은 사원들 위주로 개발팀을 꾸리자.’
당시 하시노부터 30대 초반이였거니 자신이 몸담은 아틀러스의 마지막 게임이 될 수도 있는 ‘페르소나 3’를 위해 그를 중심으로 젊은 개발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당시 보조 디자이너로 활동했었지만 페르소나 3에서 아틀러스 간판 일러스트레이터인 카즈마 카네코 대신 아트 디렉터직에 발탁된 소에지마 시게노리
페르소나 1로 데뷔해서 다시 한번 페르소나 IP로 돌아온 메구로 쇼지까지
모두 3 개발 당시 40대 아래인 젋은 사원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나갔다.
‘앞서 말했듯이 이거 망하면 ㅈ되는거야, 알겠지? 진짜 잘 만들어야 한다?’
‘부담 존나주네 ㅅㅂ, 나만 믿고 그냥 지켜나 보쇼’
2006년 7월, 게임 ‘페르소나 3’는 일본에서 발매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였다.
페르소나 3는 첫주에 100만장을 돌파하여 당시 아틀러스가 무너져 내리지 않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페르소나 3의 수치가 다른 작품보다 적어보이지만, 신규 유저 유입에 애를 먹은 페르소나 2이후 5년만의 작품인데다가 당시 회사 사정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기에 가장 중요한 게임이였던 페르소나3의 성공이 중요해졌다. 단순히 판매량이 높아서 성공이 아니라, 회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판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대성공이라고 본 것이다.
페르소나 3의 주제인 ‘구원’과 이 게임이 아틀러스에게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아틀러스는 페르소나 3의 후일담 및 확장판을 FES라는 부제를 달고 출시했는데, 이는 어찌보면 아틀러스 입장에서는 회사가 죽다 살아나 다시 벌이는 ‘축제’라는 뜻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었다.
그 이후, 페르소나는 3이후 후속작인 4,5가 연속으로 비평과 상업적인 부분에서 대 히트를 치면서 진여신전생을 밀어내고 2010년대-2020년대 아틀러스의 주력 IP가 되었다. 마치 ‘형보다 나은 아우’라고 2013년에 아틀러스를 인수한 세가에서도 진여신전생보단 페르소나 시리즈의 글로벌 성장을 지켜보면서 세가 내부에서도 단순히 아틀러스뿐만 아닌 세가를 대표하는 명실상부 메이저 IP로 자리 잡았기에, 3의 성공이 어디까지 이어져 왔는지는 가늠할 수가 없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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