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SK 금고 땄던 초임 검사…21년 뒤 지금은?
SK그룹 분식회계 사건
2003년 초임 검사 행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서울에서 나고 자라 현대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한 학생은,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당시 제37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27기)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검사가 된 학생은 검찰에서 기업 특수수사에 능한 특수통 검사로 이름을 날리며 SK그룹의 분식회계 사건을 담당했다. 서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SK그룹의 금고를 열어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한 초임 검사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검찰에서 기업 특수수사로 이름을 날린 주인공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다. 과거 그는 초임 검사 시절 SK 1차 수사 때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SK그룹의 본사인 SK서린빌딩에 접근한 한동훈 대표는 33층 구조조정본부를 찾았다.
당시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에는 한동훈 대표와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 수석검사 이석환(전 청주지검장)이 함께 수사를 진행했다. SK 사옥에 들이닥치기 전 그들은 본사 주변을 맴돌며 1층 로비의 구조와 출입 시스템, 방호원 숫자 등을 면밀히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당시에는 전례 없는 대규모 대기업 압수수색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심기일전하며 SK사옥을 찾은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당시 수사의 성패가 SK사옥 압수수색에 달려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SK가 압수수색 대비 매뉴얼을 만들어 경비 인력들에게 배포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한동훈 대표는 압수수색을 위한 준비를 더욱 철저히 했다.
철저한 준비 덕분에 손쉽게 SK사옥에 접근한 한동훈 대표는 SK 최태원 회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집무실 내에서 중요한 서류 뭉치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고 그중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 큰 단위의 숫자들이 줄줄이 나열된 서류를 발견했다.
이어 당시 그룹 회장을 맡고 있던 손길승 전 회장의 사무실을 찾은 한동훈 대표는 금고를 열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다만, SK 측이 금고를 쉽게 열어주지 않아 이들과 입씨름해야 했다. 한동훈 대표가 “금고 여세요”라고 말하자 SK 측은 “안 됩니다. 열 수 없습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동훈 대표가 수사관에게 “당장 금고 기술자 불러오세요!”라는 지시를 내리며 결국 SK그룹의 금고는 열렸다. 이에 최태원 SK 회장을 구속해 한동훈 대표는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런 SK 그룹의 수사는 대기업 자체를 겨냥한 수사로는 초유의 사례로 기록됐다.
이 사건 이후 굵직한 대기업 수사를 줄줄이 맡은 한동훈 대표에게는 새로운 별칭이 생겼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그를 ‘조선제일검’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실제로 그는 최태원 SK 회장을 비롯해 정몽구 당시 현대자동차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이명박 전 대통령, 조국 일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등을 구속했다.
그가 국정농단 수사팀에 합류했을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까지 구속기소 하며 ‘재계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한동훈 대표는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임명돼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실소유주 관련 의혹 수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등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하며 역대 최연소 검사장 자리에 오르는 등 검찰 내에서 승승장구했다. 다만, 조국 일가 수사를 지휘한 이후 압박을 받아오며 곤욕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22년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한 대표를 법무부 장관직에 깜짝 발탁하면서 화려한 부활 소식을 전하며 권력의 중심에 섰다.
지난 2023년 법무부 장관 사퇴 직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정치인을 길을 걷기 시작한다. 실제로 지난 4월 여당의 22대 총선 참패 직후 사퇴했으나 3개월 만에 전당대회를 거친 당 대표로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한편, 지난 5일 한동훈 대표는 자신의 손으로 구속했던 최태원 회장과 만나 “대한민국은 상공인들이 여기까지 만들어낸 나라”라며 “저희 정치는 상공인들이 창의성을 발현하고 성공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국회를 찾은 최태원 회장은 한동훈 대표와 만나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회장은 한동훈 대표를 향해 “늦었지만, 취임 축하드린다”고 입을 뗀 뒤 “그동안 상당히 무더웠다. 더위가 가시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데 우리 경제에도 좀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길 바란다. 또 그런 지원을 부탁드리고자 이렇게 찾아뵀다”라는 말을 전했다. 이들이 ‘악연’으로 출발했다고는 하나, 이날 두 사람 사이에서 별다른 기류는 감지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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