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L 9주차] ‘미소 천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던 날 – 실시간 베스트 갤러리
*TNF 때문에 이미 10주차 경기가 끝나버린 상황이지만 작성해 둔 게 있어서 올림다
*경기 리뷰보다는 제이 플라워스를 다룬 글인데, 정작 10주차에서 별 활약이 없었네 무안하게시리…ㅋㅋㅋ
*재밌게 읽어주시길
항상 웃상이다. 장소 불문이다. 훈련장이든, 경기장이든, 기자들 앞에서든 장난스런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다. 치아 개수가 훤히 보이는 ‘살인 미소’다.
미소 천사의 주인공은 작년 리그에 입성한 어린 리시버다. 일명 ‘조이스틱’. 게임 캐릭터처럼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특출난 방향전환 능력을 가졌다.
드래프트 1라운드에 뽑힌 유망주다. 가뜩이나 ‘리시버 난’에 시달리던 팀 아닌가. 모든 팬의 관심이 쏠렸다. 그 중에는 ‘작은 체구로 리그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기우였다. 트레이닝 캠프부터 싹수를 보여줬다. 시즌이 시작됐다. 단번에 팀내 1번 리시버로 자리매김했다. 시즌이 끝날 쯤엔 프랜차이즈 기록도 갈아치웠다. 역대 신인 리시버 야드, 타깃 1위다.
타고난 성격이 어디 갈까. 라커룸 분위기를 주도하는 분위기 메이커다. 쿼터백과 호흡도 특별하다. 인간적으로 친밀하면 경기 중 호흡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조이스틱의 유쾌함에 무뚝뚝한 쿼터백도 마음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다. 딱 한 번, 이 미소 천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적이 있다.
1야드 차이로 무산된 슈퍼볼 진출
달력을 뒤로 넘겨 보자. 그러니까 지난 1월이다. AFC 컨퍼런스 챔피언십 경기가 한창이던 때다.
까마귀 둥지가 조용하다. 맥없이 끌려가는 중이다. ‘정규 시즌 1위팀’이라는 이름값이 무색하다. 이 경기만 이기면 슈퍼볼이건만, 좀체 풀리지 않는다.
그렇게 맞이한 3쿼터다. 스코어 17-7. 뒤늦게 쿼터백이 각성한다. 조이스틱이 폭발적인 플레이를 연달아 성공 시킨다. 순식간에 엔드존 코앞까지 밀고 간다. 경기장이 다시 뜨거워진다.
골라인 9야드 앞이다. 여기서 득점하면 동점이다. 쿼터백이 공을 받아 들고 침착하게 필드를 스캔한다. 홀로 중앙을 가로지르는 리시버가 보인다. 조이스틱이다.
가슴팍에 정확한 패스를 꽂는다. 따라붙는 수비는 없다. 엔드존까지 길이 뻥 뚫려 있다. 조이스틱이 그대로 몸을 날린다. 엔드존 입성. 터치다운.
…인줄 알았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상대 선수들이 심판에게 뭔가를 강력히 어필 중이다. 잔뜩 흥분한 모습이다. 당사자는 상황 파악이 안된다. 그저 손에서 빠져나간 공을 열심히 찾을 뿐이다.
잠시 후, 상대 공격권이 선언된다.
전말은 이렇다. 터치다운을 위해 다이빙을 했을 때다. 골라인까지 남은 거리는 1야드. 아니 채 반 야드도 안된다. 그 순간이다. 허공에서 주먹 하나가 튀어 나오더니 조이스틱 손에 있던 공을 정확히 쳐낸다. 펌블을 만들어낸 수비의 멋진 플레이다.
빠져나온 공이 엔드존에 떨어지고, 상대 수비가 그 위로 몸을 날린다. 득점은커녕 공격권을 상대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역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한번 넘어간 흐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최종 스코어 17-10. 그렇게 까마귀의 시즌이 종료됐다.
경기를 본 모두의 소감은 똑같았다. 우리 팀도, 상대 팀도, NFL 시청자도, 당사자도 딱 한 가지 생각을 했다. ‘그 펌블만 아니었다면…’
경기 직후 라커룸이다. 조이스틱에게 카메라가 우르르 몰린다. 인터뷰이의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처음으로 미소 천사의 얼굴이 굳어 있던 순간이다.
시련이 꽃을 피운다
죄책감이 얼마나 컸겠는가. 자기 때문에 팀이 패배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을 테다. 신인에겐 너무나 가혹한 신고식이다. 그럼에도다. 퉁퉁 부은 얼굴로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
“그건(펌블) 그저 한 순간일 뿐입니다. 저는 리그 최고의 리시버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코 그 순간이 앞으로의 저를 정의하도록 두지 않을 겁니다.” (제이 플라워스)
동료들의 격려도 이어진다. “우리 모두 실수를 해요. 이건 그의 첫 시즌일 뿐입니다.” (라마 잭슨) “그가 이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선수이자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요.” (오델 베컴 주니어)
그로부터 8개월이 흘렀다. 그러니까 지난 9월 트레이닝 캠프 때다. 훈련장에 조이스틱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전히 쾌활한 미소다.
첫 공개 훈련이 끝나고서다. 기자들이 ‘그 사건’에 대해 묻는다. 이렇게 답한다. “물론 연료로 삼고 있어요. 그치만 지금은 새 시즌입니다.(I use it as fuel, but it’s a new season.)” 성장의 발판으로 삼되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시즌이 시작되니 분명해졌다. 작년보다 폼이 나아졌다. 쿼터백과 호흡은 더 좋아졌고, 세퍼레이션을 만드는 움직임이나 캐치 후 동작도 더 간결해졌다.
9주차 브롱코스 전에서 보여준 52야드 터치다운이 대표적이다. 전반 종료 1분여를 남긴 상황. 조이스틱이 상대 필드 중앙에서 패스를 받아냈다. 순식간에 수비 3~4명이 순식간에 둘러싼다. 이미 필드골 거리까지는 왔다. 태클 당해 쓰러져도 ‘잘했다’ 소리 들을 상황이다.
그런데 거기서 기적을 보여준다. 몸짓 하나로 코앞의 태클을 벗겨내더니 우측으로 빠르게 달려 수비 4명을 제치고 득점을 만들어낸다. 이날 조이스틱은 127야드(5/6), 2 터치다운을 기록했다. 현재(9주차 기준) 총 리시빙 야드에서 리그 5위다.
경기 후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공을 잡았을 때 그냥 쓰러진다거나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나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엔드존까지 나아갈 방법을 찾으려 합니다.” (제이 플라워스)
재밌는 통계가 있다. 5~9주차만 봤을 때의 숫자다. 리시빙 야드(496), YAC(캐치 이후의 전진 거리, 232)에서 모두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집착과 의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숫자다.
스스로를 정의하는 건 실력
잠시 쿼터백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올해 활약이 대단하다. ‘MVP를 수상한 작년보다 훨씬 낫다’는 게 현지 평가다. 이런 흐름이라면 2년 연속 MVP도 문제없다.
특히 돋보이는 건 패스 능력이다. 현재 패싱 야드, 시도 당 야드, 패서 레이팅, 패스 터치다운, 인터셉션 등 패스 관련 지표에서 모두 리그 최상위권이다.
이번 경기에서도 280 패싱야드(16/19), 3 터치다운, 158.3 패서레이팅(만점)을 기록했다. 다리는 쓰지도 않았다. 순수하게 팔만으로 필드를 장악했다. 이제껏 ‘약점’으로 조롱받던 패스가 어느새 강점이 됐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존재한다. 훈련, 코칭, 전술, 선수 영입, 마음 가짐 등등. 그 중 하나가 2년차 조이스틱의 발전이다.
올 시즌 레이븐스는 모션에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스냅 전 특정 선수를 이리 저리 움직이게 해 수비 전술을 판단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수비의 간을 보는 셈. 레이븐스는 공격의 3분의 2에서 모션을 쓰고 있고, 이 상황에서 73% 공격 성공률, 9 터치다운, 시도당 10.1야드를 전진하고 있다(9주차 기준). 그리고 이 모션의 주요 수행자가 조이스틱이다.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재능이 모인 레이븐스 공격팀이다. 여기서 당당하게 1번 리시버로 자리매김했다. 팀 동료는 2년차 조이스틱의 헝그리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제이는 신인 시즌에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놓고도 끊임 없이 배고파해요. 그게 이번 시즌 그의 성장의 가장 큰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넬슨 아골로어)
다시 달력을 1월로 돌려 보자. ‘그 사건’이 일어난 때다. 미소 천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날. 이렇게 말했었다. “그 순간이 앞으로의 저를 정의하도록 두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출처: 미식축구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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