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알다시피 교토만박은 교토 국제 만화 뮤지엄의 줄임말이다
방금 내가 그렇게 정했다
오늘은 오전 내 교또 여행을 하다가 오후에 이 교토만박을 방문해 보았다
해당 박물관은 교토의 도심가, 니시키시장의 근처에 위치하며
입장료는 성인 1200엔, 오후 5시 폐관이니 관심있는 월첩들은 알아서 계획을 고려해 보자
교토치곤 고맙게도 카드결제도 가능함
티켓을 끊고 입장하면 바로 수많은 책장들이 반겨준다
입구에는 만화 엑스포라 해서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일본만화들이 좌르륵 놓여있음
그중 가장 비중이 큰 책장은 당연히 영어지만
그 뒤를 한국이 바로 뒤쫓고 있음
역시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문화나 감성도 비슷하다보니 정발하기 좋은가봄
그 뒤로는 다들 얼추 예상할 수 있듯 동남아 쪽과 프랑스가 좀 많았던 거 같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방명록 게시판
대 딸깍(띄어쓰기 조심)의 시대에 이렇게 인간미 넘치는 삐뚤빼뚤 손그림을 보니 정겹다
자세히 보면 중앙에 대전 웹툰 캠퍼스에서 다녀갔다는 메모도 있음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뜬금없게도 교장실이 있는데
이 만화박물관 자체가 저출산으로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서 만든 거라고 함
아무리 그렇대도 교장실을 그대로 남기는 건 무슨 센스인지
난 맨 처음에 무슨 일본 만화 특유의 교장실 시뮬라크르 같은 걸 재현한 건줄 알고 오ㅋㅋ하며 갔는데 초등학교 역사만 나열되어 있어서 시무룩하고서 나옴
1층 안쪽에는 신발 벗고 자유롭게 누워서 만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위주를 각종 어린이 학습만화나 위인전 만화로 채워놓았다
일종의 망가 키즈존 느낌
근데 위인전 작화 꼴림력 뭐인
약간 모리 카오루 느낌
이런 음란한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냐앗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 귀빈실이 있는데
시발 저거 사람인줄 알고 깜짝 놀람
미친 음양사 할배가 자리지키고 있는건줄 알고 움찔했는데 그냥 판넬이더라
대체 무슨 센스냐고
통로에는 만화의 역사에 관한 여러가지 칼럼들과
백년도 더 된 틀딱만화들의 견본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하나인 황금박쥐
1930년대 동명의 종이연극을 기반으로 해 나온 만화라고 함 (from 나무위키)
열어봤더니 그림이나 글이나 열량이 장난 아니다
컷 하나하나마다 읽는 순서의 번호를 적어놓은 것도 시대를 느끼게 하는
그리고 더 들어가면 별실에 있는 만화가들의 손 석고상 전시관
치바 테츠야, 토미노 요시유키, 몽키 펀치, 야스히코 요시카즈 등 숱한 거장들의 손과 그림, 싸인이 전시되어 있다
모리가오루 여사 등등
사진을 찍진 않았지만 시마모코 카즈히코도 있었음
그리고 올라가면 나오는 별실은 나뭇바닥에 초등학교의 의자와 책상들을 배치해서 마치 시청각교실처럼 꾸며놨는데
그 벽 한켠에는 연필 한 자루와 수많은 노트들이 놓여있었다
이 노트들이 뭔고 하니 바로 학창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낙서용 노트
안쪽을 펼쳐보면 전세계 만붕이들의 n년치 낙서가 전시되어 있다
영어도 있고 한국어도 있고 삐뚤빼뚤 쓴 일본어도 있고..
초딩때가 생각나 정겨운 마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삐뚤빼뚤 씹덕그림들 이거 맛도리거든요
온 김에 부끄럽게나마 나도 그림 한 장 남기고 옴
그렇게 방명록 그림을 그리고 나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갑자기 웬 누나가 나타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판넬들을 넘기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원시씹덕 응원상영 (싸젯말로 종이연극)이 시작된 것
상영작은 위에도 잠깐 설명했던 「황금 박쥐」
실감나는 연기와 판넬을 열었다 말았다 하는 각종 손재간 연출을 보니 내용이랑 상관없이 흥미진진하고 재미가 있었다
그 뒤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반겨주는 불새의 거대 조형물
순간 이 꼴받는 새끼를 내가 왜 크게 봐야하는가 싶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새끼는 원래부터 인간이 싫어하는 짓만 골라하는 새끼므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진정한 본관이라 할 수 있을만한 시대별 만화도서관에 도착
1912년부터 시작해서 2010년대에 달하기까지
수많은 만화와 잡지들을 시대순으로 정렬해 놨다
만화에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감탄할 수준
1912년의 만화를 한 권 꺼내 펼쳐본다
약간 리듬세상 느낌
팝한 그림은 시대를 타지 않는구나
전시실 한가운데에는 만화의 개념, 역사, 제작공정, 국가별 특성 등이 안내된 판넬들이 서 있다
사진은 “만화그리기를 더 알아보고 싶다면!” 이라는 테마로 추천하는 만화들
이그죽도 넣어다오
일본어를 하는 도라에몽을 보고서 한 컷
난 어릴 땐 진구도 지우도 태일이도 모두 한국인인줄 알았어
만력이 짧은 나도 알 수 있는 유명틀딱만화 낚시광 산페이
50년도 더 된 만화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쾌한 선화
첫 장을 넘기자마자 강렬한 미히라키
이 시절부터 이미 이렇게 세련된 연출들이 사용되고 있었구나 싶어서 놀랐음
재색겸비 고져스 영애 데스와 캐릭의 원조인 나비부인의 기념비적 첫 등장
그러나 이 우아한 여성은 곧 재능충 여주에 의해 테니스의 영예도 은근한 썸남도 모두 빼앗기고서 그저 바닥만을 구르는 추한 패배자로 전락하게 된다…
원조부터가 이모양이니 데스와영애캐릭이 항상 패배루트를 타는 것이 이해가 간다
태생부터 파멸과 출하가 예정된 속성이었던 것
여기서 한시간 정도 책을 읽다가
폐점시간도 가까워지고 몸도 피곤한지라 슬슬 자리를 이동하기로 함
제가 찾던 이그죽 여기 있네요
계단통의 복도에 전시되어 있던 만화상 수상작들 책장
월첩픽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층에는 (일본산이 아닌) 외국의 만화, 가이만(外漫, 외만) 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중 한국만화에 「내 애인은 넷우익」이라는 만화가 있더라
왜…이런 만화를….???
주말에는 만화 그리는 법 개인상담 같은 것도 하나 봄
굉장히 궁금한데 일정과 맞지 않아서 영영 못할듯 하다
그리고 폐장 10분 전에 기념품샵을 들렀는데
각종 만화그리기용 도구(딥펜과 펜촉, 잉크, 원고용지, 색연필 등)와
스킵로퍼, 블루피리어드, 고깔모자의 아틀리에, 카이지, 페이블 등등 월첩픽 굿즈가 많았음
개인적으로 오프에서 본 적이 없는 작품군이라 많이 놀랐다
원나블 귀주톱 굿즈들은 아예 없거나 구색맞추기로 한두개정도 있는 수준
ㄹㅇ루 점원=상 만력 높음을 느낌
다만 기념품샵은 촬영 금지라서 아무것도 찍지 못했다…
이쁜굿즈 많았는데 아쉽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망가뮤지엄의 굿즈인 기념 메달을 팔길래 그걸 하나 사옴
리스트업은 이렇게 됨
맨 왼쪽은 메달용 키홀더, 그 옆은 뮤지엄 마스코트 캐릭터고
그 뒤로는 싹다 데즈카의 만화들이다
만신의 품위…느껴지십니까?
난 당돌한 피노코가 그려진 블락꾸쟉꾸 메달이 가장 맘에 들어 그걸로 구매
으흐흐
키홀더에 끼우면 이렇게 된다
싼 가격은 아니지만 두고두고 기억할만한 기념품이라 생각해서 만족스러움
사실 작품들은 작품 그 자체가 최고의 굿즈인 경우가 많다 보니 이렇게 박물관 굿즈 사는 게 더 나은 것 같더라고
공간도 안 차지하고…
암튼 이리하여 짧고도 즐거웠던 교또 망가뮤지엄 관람이 끝났다
신나서 돌아다닌다고 사진을 찍는 걸 깜빡했는데 통로통로마다 책장이 판타지 도서관마냥 주르륵 배열되어 있고
그 안에 정말 많은 만화들이 들어있었다
난 순정만화가 그렇게 많은줄 몰랐어
비록 내가 만력도 일어력도 딸려서 100% 즐기진 못했지만
짧은 식견이나마 백년을 넘게 이어진 만화 역사를 엿보고
또 세계 각국의 만붕이 만화인들과 같은 공간에서 만난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월첩들도 기회가 된다면 교토에 들러 만화 뮤지엄을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돈과 시간이 없어서 방문 못한다고? 사실 나도 암ㅋㅋ 그냥 글 마무리지으려고 빈말 한번 씨부려봤다
근데 니가 몰할수있는데?ㅋㅋ 심술나서 비추벅벅쏘는거 말고 뭘할수있냐고ㅋㅋㅋ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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