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 요약(3)
지난 이야기 : 볼 거 다 봐놓고 정작 여행의 진짜 목표였던 도쿠노시마에는 가지 못하게 된 일붕이!!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는 어떻게해… 이미 1번 바꾼 일정인데 또 바꿔버린 상태라 그냥 다 포기하고 슬슬 남규슈를 벗어나 귀국을 향한 북진 레이스를 시작하게 됐음.
그 와중에 어디를 가는지에 대해서도 얼마나 답이 없었는지 박물관에서 봤던 것의 실물을 보러 가기도 했다. 이나바자키의 석탑군이라는 곳으로, 사쓰마의 초기 불교의 유물이라고 함. 배경 지식이 있고 의욕과 의향만 있다면 이런 방식의 여행도 재미는 있다.
묘켄 온천촌. 기리시마의 장점은 대부분의 온천들이 깊은 숲에 둘러쌓여 있어서 분위기가 진짜 좋다는 건데, 단점이라면 생각보다 수질이 대단하지 않다는 점. 꽤 활발한 화산들이 있는 지역 치고는 의외로 대부분이 소금이거나 철분 온천뿐이다. 그래도 너무 좋았어서 이날 온천욕만 4번 했을 거임.
일붕이 픽으로 ‘대나무의 비탕’이라는 곳도 찾아갔는데, 좌표에 의지해 겨우 찾아가서 고속도로 밑 대자연에 나체로 몸 담구는 그 해방감은… 진짜 말로 표현 다 못하겠음
아이라. 겉으로 보면 평범한 가고시마 시의 통근권이지만 옛날에는 절이 엄청 많았던 곳이다. 메이지유신 시절 폐불훼석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게 사쓰마 번이었기 때문에 박살났다가 애매하게 재건되거나 사당만 남아버린 절들이 매우 많은 곳이었음. 접근성이 좋아서 가벼운 등산으로 즐기기 좋았던 곳이었다.
(하야토의 개 석상)
하야토. 기리시마 시의 중심가 중 하나로, 가고시마 신궁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함. 아직 일본이 야마토 민족이라 불리는 고대 국가의 상태일 적에, 이곳엔 당시 일본에 협조적이지 않던 하야토라는 민족이 별개로 번성하고 있었다고 함. 전쟁으로 복속시키고 나서도 그 명맥이 아주 쪼끔은 남아서 지금은 지역색의 일종으로 변했다나?
히토요시. 원래는 언젠가의 여행 목표로 미뤄두려고 했는데 도쿠노시마 일정이 깡그리 취소되면서 오게 되었다. 알다시피 2020년 수해로부터 JR관할의 철도선(히사츠선)은 수익 문제로 복구를 진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후쿠오카, 가고시마, 야쓰시로(구마모토), 미야자키에서 고속버스로만 접근할 수 있음.
생각보다 꽤 시가지가 커서 철도가 전부 끊겼음에도 나름 자립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온천으로 유명한 만큼 수질이 좋은 편이었음. 특이한 점이라면 대다수의 온천이 무인 카운터로 운영된다는 점. 덕분에 꽤 늦게까지 열리는 곳들이 많았다.
야마에무라. 히토요시 시의 북쪽에 있는 작은 농촌인데, 분위기도 히토요시 분지의 축소판에 가깝고, 관음당 관련해서 박물관에 정보가 아주 잘 정리되어 있었다. 만약 히토요시판 오헨로인 33관음당 순례를 해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서 정보를 습득하는게 좋을지도?
(수해로 박살나버린 시로야마 관음당)
2020년 수해로부터 대부분의 복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문화재의 경우는 복구가 미뤄지는 경우가 많았음. 시로야마 관음당의 경우는 현재까지도 사당이 복구되지 못해서 야마에무라 지역사 박물관에 다른 관음상들과 같이 임시보관 겸 전시 중인 상태였다.
유노마에. 히토요시 분지의 반대편 끝에는 유노마에가 있다. ‘온천 앞’이라는 동네 이름이 무색하게 중심지에서 유명한 온천인 유야마 온천은 7km, 유라리 온천은 3km 떨어져 있음… 이름만 보고 온천이 많을 줄 알았는데 뒤통수 맞았다.
히토요시 분지에는 관음당과 일부 신사들이 독특한 초가 지붕의 양식으로 지어져 있는게 유명한 편임. 이 양식으로 가장 유명한 건물은 아오이아소 신사가 있고, 그 외에도 분지 서부를 중심으로 전역에 걸쳐 초가 지붕으로 지어진 종교적 건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건데, 히토요시 분지는 오는게 어려워서 그렇지, 분지를 종단하는 버스도 좀 자주 있는 편이고, 분지 안은 평평한 곳이 많아서 자전거 여행하기에 정말 적합해 보였다. 자전거 끌고 한번 가보셈.
제3섹터로 넘어가버린 덕에 수익을 따질 세도 없이 유일하게 복구해서 운행 중인 유노마에선. 근데 새벽부터 아침 8시까지, 저녁 5시쯤부터 밤까지만 열차가 있어서 관광객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게다가 히토요시 시내가 아니라 변방의 히고니시노무라 역까지만 운행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래도 내년이면 유노마에 선은 완전히 정상화되어서 히토요시 역까지도 정상적인 배차로 운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어차피 낮 동안은 운행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철도길을 지름길 삼아 걸어다니는 기분이 묘하긴 했다.
히토요시 분지는 「나츠메 우인장」이라는 만화의 배경인 듯함. 분지 안이라면 어디를 가든 나츠메 우인장의 캐릭터가 있고, 어디를 가든 나츠메 우인장 성지 순례 왔냐는 질문을 받는다. 난 본 적도 없는데 너무 구석구석 흝다보니 얼떨결에 성지 순례가 되어버림…
히토요시는 안개가 엄청난 걸로도 유명한 동네다. 급류로 유명한 쿠마 강에, 넓고 긴 히토요시 분지, 이곳과 에비노 고원을 기준으로 전반적인 규슈의 기후와 가고시마의 기후도 갈리기 때문에 안개가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진다고. 12시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안개가 많이 신기했음. 좋은 사진을 건질 수가 없어서 열도 많이 받았지만.
나시키마치의 정중앙에는 해군 훈련소로 쓰이던 ‘비밀기지’가 있다. 몰락작전의 상륙 타격 목표를 선정할 때 미군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점을 들어 비밀 기지였다고 홍보하고 있는 곳이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소소한 볼거리가 많아서 투어 신청한게 아깝지 않았음. 오히려 30분짜리 말고 1시간짜리 투어로 신청하지 않은게 아쉬웠을 정도였다.
야쓰시로. 원래 일정대로라면 도쿠노시마에서 올라오는 당일이 야쓰시로 묘켄사이의 본 축젯날이라서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 때문에 거를 생각도 하고 있었음. 근데 어째 이렇게 여유가 생겨버려서 전야제를 구경할 시간마저 생겨버렸다. 비슷한 유네스코 무형유산인 국악 공연단이 이곳에 초대되어 뜬금없이 일본에서 국악을 감상하기도 했음.
야쓰시로 묘켄사이. 3일 내내 시끌시끌한 가라쓰 군치와 비교하면 본축제가 하루만에 끝나는 거라 볼거리가 없을 것 같아 기대감을 좀 죽인 감이 있었는데, 도파민 대폭발하는 축제였다. 말과 함께 사람들이 강을 달리는 장면, 사자탈과 기다(거북이탈)가 시내 곳곳을 돌며 무병을 기원하는 모습 등등, 인상깊은 장면이 너무 많았어서 거르지 않고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음.
주변에 축제 제대로 보려고 하루종일 뛰어다닌 얘기해주니까 무슨 취재를 갔냐더라… 내가 생각해봐도 무슨 취재 수준으로 다니긴 했었음…
우토. 솔직히 말하면 나가베타 씨 로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긴 했음. 타라초의 해저 도로처럼 간조가 좋을 줄 알고 맞춰서 갔는데, 막상 가보니까 이쪽은 만조 명소에 가까웠던 거임~ 오히려 갯벌에 허리까지 빠져서 죽을 뻔한 불쾌한 기억만 남아버렸음… 지나가다 뜬금없이 찾게된 센타이부츠가 굉장히 인상깊긴 했다. 커다란 바위에 마애불을 1000개 세겨넣은 거라는데, 바위를 둘러서 잔뜩 세겨진 마애불들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꽤 멋졌음.
찐막이자 급조된 일정은 바로 히코 산에 가보는 것이었다. 후쿠오카 시내에서 무려 3시간 정도 환승 5번을 해야 갈 수 있었는데, 마침 단풍이 들기 시작했어서 정말 예뻤음. 아침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역시 유명해서 그런지 점심 쯤되면서 사람이 점점 늘어나더라.
등산하기에는 좀 거친 산이긴한데 장비 없이도 오를만은 했음. 산 곳곳에 크고 작은 절과 신사가, 히코산 본궁 외에도 등산로를 따라 중궁과 상궁이 따로 있는데, 정상에 있는 상궁은 아직 증축 중이라서 가지 못했고 중궁까지만 올라갔다.
타가와. 무슨 자율 동굴 탐험하는 곳이 눈에 띄어서 히코 산에서 하산하는 시간을 쪼개서 구경하기로 했는데, 동굴이 너무 좁아서 없던 폐쇄공포증도 제대로 자극돼서 비명 지르면서 나왔음…
타가와 시내 자체는 무난하게 잘 꾸며져 있다. 석탄박물관과 아케이드 거리가 뭔가 괜찮았던 기억이 남. 한국인 관련 위령비들도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 여기가 후쿠오카에서 친해진 사람의 동네라서 먼 미래에 다시 일본에 오게 되거든 5월 타가와의 큰 마츠리인 카와와타리진코사이를 보러 오기로 약속했음.
귀국 전 마지막 일정은 후쿠오카 시메마치.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마지막에 보기로 점 찍어둔 수직 갱도를 보러가는 것이었다. 역시 기대한대로 기가 막힌 사진을 뽑아주는 곳이었음. 마지막 일정인만큼 여유롭게 여기 구경하고 근처 스시로 갔다가 이온몰 구경하면서 대만족하고 이제 공항으로 가면 됐는데…
결항이라고요…?? 그렇다, 인천공항이 폭설 때문에 개판이 나면서 지연에 지연을 거듭하다가 운항은 8시까지, 법적으론 10시 이후로 비행기를 띄울 수 없는 후쿠오카 공항의 특성 때문에 대부분의 비행기들이 싸그리 결항하게 됐던 거임~
5시에 출국 게이트를 넘어갔는데 출국 취소가 밤 11시에나 이루어져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음. 게다가 내일 나가는 표가 이미 다 팔려버려서 내일 출국도 아니고 이틀 뒤 출국이라는 거시기한 상태가 되어버림…
그래서 그냥 고전게임 돌리는 오락실 찾아내서 내가 잘하는 거(격겜)만 주구장창하면서 폐인처럼 이틀을 보냄. 게임 안할 때는 밥 먹고 대충 여태 안 본 것들 구경도 다녔는데 후쿠오카에 안 그래도 많았던 한국인이 2배는 많아지니까 뭔가 웃기긴 했음. 일본 사람들도 “지금 한국에 뭐 있음? 원래 이렇게까지 한국인이 많았나?”하는게 특히 웃겼다.
너네도 여행자 보험 꼭 들어라. 그래도 식비랑 숙소비 충당이 되어서 달달했다ㅇㅇ… 지연은 있어도 결항을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음…
아무튼 그렇게 1달 여행이 끝났음. 사실 분량에 맞추느라 생략한게 엄청 많았는데 언젠가는 일붕이들한테도 하나하나 자세히 꼭 보여주고 싶다. 줄이고 줄였는데도 사진 150장(글 3개)이 필요할 줄은 몰랐음…
출처: 일본여행 – 관동이외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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