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오 증류소 투어 후기
본인은 술을 몹시 사랑하기 때문에
일여를 가면 되도록 맥주공장이든 증류소든 양조장이든 하나를 넣는 편이다
이번에는 히로시마를 간 김에 항상 바와 면세점에서 신경쓰였던 ‘그 증류소’
사쿠라오 증류소 투어를 신청해서 갔다
투어 예약은 사쿠라오 증류소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고 2000엔의 투어비를 현장에 가서 지불한다
언어는 하루에 일본어 2타임 영어 1타임 진행한다
나는 10:30 영어 투어로 신청했다
근데 나 말고 다 일본인이고 나도 일본어를 할 줄 아는게 뽀록나서
그냥 일본어로 진행함
JR 하쓰카이치역에서 대충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사쿠라오 증류소
사쿠라오 증류소는 160년의 역사를 지닌 초 근본 증류소로
역사만 따지면 그 산토리와 견줄만 한 곳이다
원래는 사케와 소츄만 만드는 곳이었지만
2대 회장의 결단으로 우리도 양주 함 만들어보입시더 하고 소츄 만들던 짬빱으로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투어의 시작점인 방문자 센터
사쿠라오의 마크는 위가 술의 물방울, 아래가 벚꽃의 꽃잎(사쿠라)를 상징한다
위스키를 만드는 건 그것대로 일이었지만
사쿠라오 증류소는 한가지 난관에 봉착한다
일단 위스키를 만들었는데
이 위스키를 바로 팔아서 돈을 땡길 수 있느냐?
그게 안 된다 위스키는 필수적으로 몇 년 간 숙성해야하기 때문에
투자한 돈은 다 숙성고에 갇혀서 돈이 안 돌고
그렇다고 그걸 그대로 방치할 정도로 사쿠라오는 돈 많은 회사가 아니었기에
사쿠라오 증류소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방문자 센터 내부
그래서 떠올린 타개책이 진을 만드는 것이었다
진은 숙성이 거의 필요없으니까
일단 위스키가 숙성을 마칠 때까지 진을 팔아 버틴다는 전략이었다
방문자 센터에서 파는 이모저모의 술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기똥찬 진이 필요했다
위스키를 전혀 팔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그런 진을
그래서 당시 사쿠라오 증류소의 연구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미친듯이 진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 집념 덕분에 사쿠라오의 진은 뛰어난 상품성으로 널리 팔리게 되었다
이것이 사쿠라오 증류소의 간판 상품이 진이 된 이유다
존나 낡아보이는 건물이지만 이게 사쿠라오의 본사다
160년의 세월이 엿보이는 곳
저기의 높은 건물은 사케 및 소츄 및 여타 과실주 등등
위스키와 진 이외의 술들을 만드는 곳이다
증류소 부지 철책 내부
이건 그 옛날 아직 연호가 좀 다를 시절 썼던 증류기다
당시 사쿠라오의 소츄 등 증류주의 생산을 책임졌던 녀석
이렇게 낡아빠질 때까지 쓴 건 증류기가 개좆같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한다
증류기는 죄다 서양에서 수입 해야 하기 때문에…
거대한 술 저장고
아마 평생 술을 마셔도 저 창고는 못 채우겠지 싶다
저기 멀리 보이는 항아리들은 과거 소츄와 사케 생산 때 쓰였던 것들이라 한다
옛날엔 일일이 항아리에 채워 보관했나봄
현재 쓰이는 증류기의 모습
진과 위스키 두 주종 모두 호환되는 모델이라 한다
이 관람실에 앉아 증류소의 역사와 이곳의 위스키를 만드는 제조공정이 담긴 영상을 보고
가이드분의 설명을 듣는 것이 투어의 첫 단계다
사쿠라오의 진에 들어가는 수많은 재료들
사쿠라오 진 오리지널에는 총 14가지의 재료가
사쿠라오 진 리미티드에는 총 17가지의 재료가 들어간다
히로시마의 맛을 표현한 리미티드에는 히로시마의 특산물 굴이 일부 들어간다고 한다
어쩐지 진토닉으로 마실 때 굴 향이 좀 난다 했더니
위스키는 맥아 분쇄 -> 발효 -> 여과 -> 증류 -> 숙성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 잔에 담긴 음료는 맥아를 발효시킨 mash로
쉽게 말해 발효시키기 전의 위스키다
맥아를 발효시킨거니 사실상 맥주와 유사한 물건인데
그래서 그런지 맥주 냄새가 난다
사쿠라오 증류소 위스키의 두 기둥인 사쿠라오와 토고우치
사쿠라오는 말 그대로 이곳 사쿠라오 증류소에서 생산하는 것이고
토고우치는 히로시마현 북부 산악지대에서 생산한다고 한다
버려진 철도 터널을 개조하여 위스키를 보관하는 것이 특징
사쿠라오 증류소의 간판 주종 진
그 네 가지 제품
앞쪽의 검정과 핑크가 각각 리미티드와 오리지널로
오리지널이 그 증류소를 일으킨 효자 진이고
리미티드는 히로시마의 맛을 구현한다는 철학으로 오직 히로시마산 재료만으로 만든 진이다
진의 주재료인 주니퍼베리(두송나무 열매)도 히로시마산을 쓴다
다만 히로시마산은 향이 약해서 오리지널과 달리 두송나무 잎도 같이 첨가하는 모양
좌우의 하얀 녀석과 푸른 녀석은 특별판으로
하얀 건 화이트 허브스라고 좀 마시기 편하고 달달한 진을 목표로 만든 것이고
푸른 건 로고에 박힌 이쓰쿠시마 오도리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미야지마를 상징하는 녀석으로
미야지마에서 여름에 피는 푸른 꽃인 하마고를 첨가한 것이다
사쿠라오 증류소의 위스키 숙성고
위스키를 담은 오크동이 산처럼 쌓인게 와이너리를 방불케 한다
사쿠라오는 꽤나 다양한 캐스크를 사용하는데
버번캐스크와 와인캐스크는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하고
비어캐스크 등등 무척 다양하다
기억상 얘가 버번캐스크였고
얘가 셰리캐스크였나 그랬음
이곳에서는 숙성고 바닥에 쏴서 보여주는 빔 프로젝션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사쿠라오 증류소는 산의 찬 바람과 바다의 온풍을 번갈아 받는데
이것은 위스키의 숙성 시간은 단축 시켜주지만 한 가지 단점을 안겨준다
바로 증발로 인한 자연손실이 크다는 것
다른 증류소들이 1% 정도의 손실을 겪는 반면 사쿠라오는 무려 6%나 증발되어 날아간다
그 자연 증발 손실을 이르는 말로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부르는데
이게 남들의 6%에 달하니 사쿠라오 증류소의 사람들은 ‘아 우리쪽의 천사들은 참으로 주당이구나!’하고 웃었다고 한다
아예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미야지마가 바로 옆이니까
‘식탐이 어마어마한거 보니 우리쪽 천사들은 미야지마의 사슴 천사인가보다!’하고 우스갯소리를 한 것에 착안해
숙성고에서 틀어주는 프로젝션에 날개 달린 사슴 천사들이 나온다
그리고 신명나게 위스키를 1년 내내 마셔댄다
그렇게 마셔대니 6%나 줄어들지…
숙성고 밖에서 포토타임
이상이 관람으로는 끝이고 신나는 시음 타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관람을 끝내면 이곳 사람들의 사쿠라오 사랑이 옅보인다
얼마나 자기들이 이곳의 술에 공을 들이는지 설명하는 가이드의 표정은 참으로 애사심으로 넘친다
아니 사실은 애주심인가…
시음의 시간
시음 가능 목록으로는 좌측부터 미야노시카, 사쿠라오 싱글몰트 소테른배치, 그리고 갓 증류한 숙성 전의 위스키와
사쿠라오 진 라인업 중 좌측부터 하마고, 화이트허브, 리미티드를 시음할 수 있다
시음 기회는 인당 3번
미야노시카는 아까 말했던 사슴 천사가 그려진 라벨이 특징으로, 사쿠라오와 토고우치 두 싱글몰트를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
사쿠라오 싱글몰트 소테른배치는 버번캐스크에 2년 반 재우고 귀부와인 캐스크에 1년 반 재운 녀석
시음을 시작하며 사쿠라오 마크가 박힌 위스키 잔을 하나씩 주는데
말 그대로 하나씩 준다
시음할 때 쓰고 집에 가져가라고 하나씩 준다…
그저 감사할 따름
나는 3번의 시음 기회를 사쿠라오 진 하마고/미야노시카/사쿠라오 싱글몰트 소테른에 사용했는데
하마고 얘는 애초에 하마고 꽃이 피는 그 짧은 시간에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물량이 존나 딸린다
그래서 선택
미야노시카는 사쿠라오와 토고우치의 맛을 둘 다 띈다(둘의 블렌드니 당연하긴하다)
둘의 맛을 아는 나에게는 꽤나 신기한 기분이었다
소테른은 귀부와인 캐스크에 숙성시켰기 때문에 확실히 와인의 향기가 짙었다
좀 달달하기도 했고
근데 사실 사쿠라오 얘네가 좆소증류소다보니(비하가 아니라 얘네 스스로 그렇게 자조함)
얘네가 파는 위스키랑 진은 대부분 면세점 호텔 바 셋에게 흡수 당해 일반 소매로는 거의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것을 선택해도 웬만큼 희소한 애들이다
시음을 끝내니 구글 지도 리뷰시 위스키 우메슈를 증정한다길래 냉큼 리뷰했다
이건 위스키랑 우메슈(메실주)를 블렌드한 것으로
사실 맛이 궁금해서 이건 하나 사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거저로 준다니 개꿀ㅋㅋ하며 사쿠라오 찬양을 멈출 수 없었다
종합하자면 히로시마 시내에서 나쁘지 않은 위치, 알찬 구성, 맛보기 힘든 술들을 시음 해 볼 기회, 증정품을 다 생각할 때
투어 비용 2천엔은 그야말로 전혀 아깝지 않다
히로시마를 여행 할 계획이 있는 갤럼은 이곳을 한 번 고려해봤음 한다
그러면 면세점에서 항상 마주칠 사쿠라오의 녀석들을 한 층 더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일본여행 – 관동이외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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