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망 엔딩…’별들에게 물어봐’도 모르는 500억 로맨스의 행방 [리폿@VIEW]
[TV리포트=남금주 기자] 제작비 500억을 투입한 국내 최초 우주정거장 드라마가 혹평 속에 막을 내렸다. 우주에서 인류 최초로 무중력 임신을 한 공효진이 출산 후 사망했다.
23일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 최종회에는 이브킴(공효진)이 우주에서 출산 후 공룡(이민호) 곁에서 세상을 떠났다.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 공효진과 이민호의 만남이었다. 그보다 기대된 건 사실 서숙향 작가와 공효진의 필승 조합. ‘파스타’, ‘질투의 화신’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한 두 사람에게 드라마 팬들이 거는 기대는 컸다. 거기다 우주정거장에서 일하는 커맨더 이브와 우주 관광객으로 온 불청객 공룡의 로맨스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첫 화였다.
우주는 이용됐을 뿐…”마우스 섹스시키고 임신시키고”
제작자와 시청자가 우주정거장을 바라보는 간극이 너무 컸던 걸까. 적어도 시청자가 국내 최초 우주정거장 드라마에서 듣고 싶은 건 섹스라는 단어가 아니고, 보고 싶은 건 초파리의 교미가 아니었다. “수컷이 드디어 암컷의 똥구멍을 핥기 시작했다. 섹스하겠단 신호다”라며 신나서 초파리의 교미를 생중계하는 이브. 아무리 초파리와 마우스의 임신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설정이라지만, 과하면 독이 될 뿐이다.
우주가 배경인 작품은 한국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들 하지만, ‘별들에게 물어봐’는 우주가 문제가 아니다. 이브가 유영을 나갔다가 위험에 빠지는 순간은 스펙터클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물론 우주에 적응도 못한 우주관광객 공룡이 직접 구하러 나와 김이 새지만, 우주와 관련된 장면 중에선 눈을 뗄 수 없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했다.
SF를 잘 몰라도 SF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에 감응할 순 있을 텐데, 드라마 내내 섹스, 임신, 정자만 얘기하는 터라 우주에 진출했는데도 이야기는 더욱 납작해진다. 단어들이 반복될수록 강요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차라리 진부하게 모성애와 부성애로 임신과 출산을 아름답게 포장했다면 눈물은 났을 텐데, 잊을 만하면 또 나오는 단어들로 시청자들은 점점 지쳐갔다. 시청률이 전부는 아니지만, 1회(3.3%), 2회(3.9%)를 제외하고는 15회까지 전국 시청률 3%를 넘은 적이 없으며, 최저 시청률은 1.8%를 찍었다.
설정부터 구시대적…”예쁜 엄마들 데리고 놀았으면 돈을 줘야 할 거 아냐”
드라마는 시대착오적 인식으로 가득 차 있다. 일단 죽은 아들의 찌그러진 정자를 복구해 대를 이어가겠다는 설정부터 구시대적이다. 며느리는 그저 아이를 낳아줄 도구일 뿐이다. 논란이 된 1화에서 쏟아지는 대사들을 보면 가히 충격적이다. 낳아준 엄마가 죽고 술집에 나가는 세 이모들 손에 자란 공룡은 “담배 향에 찌들었어도 이모들의 가슴은 아주 크고 안전했다”고 말하며, “나 공부해야 하니까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오라고 한 건 나다”고 종용한다. “예쁜 엄마들 데리고 놀았으면 돈을 줬어야 할 거 아냐”라며 취객들을 찾아가 주먹을 날린 후 돈을 회수해간 공룡은 그렇게 의사가 되고도 “섹스하고 임신시키는 건 내가 전문”이라고 말한다.
공룡이 사랑하는 여자 이브를 다루는 방식은 어떠할까. 몰래 반입된 술을 마신 공룡은 잠들려는 이브의 침실에 무단침입한다. 고백 후 “무중력과 당신이 잘못한 거다”며 이브 탓을 하는 공룡. 이건 애교였다는 걸 15화 가서야 깨닫는다. 공룡은 이브가 지구에서 모룰라를 폐기한 걸 듣고 이브의 몸이 휘청일 정도로 멱살을 잡는다. 화난다고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쯤은 용인되는 현실 사회를 풍자한 것일까.
여자 주인공 이브의 서사는 또 어떠한가. 친모 정나미(정영주)에게 버려진 채 살다가 정나미가 친자식처럼 키운 아들 공룡과 우주에서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공룡이 저지른 불법적인 일 때문에 커맨더로서 입지까지 위협을 받고, 정나미와 모녀로서 한번도 마주하지 못한 채 우주에서 출산 후 사망한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끝까지 아이를 지키려는 모성애를 강조하나 싶지만, 우주가 무덤인지 자궁인지 답을 내리고 싶어 하는 공룡을 위해 소비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과몰입은 어디에…”모룰라 폐기하면서 나도 같이 죽인 거야”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시청자가 몰입할 대상이 없다는 점이다.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하다못해 우주의 별이든 우리가 정 붙일 캐릭터나 에피소드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최고은(한지은)을 정리하지 않은 채 이브에게 고백하는 공룡, 커맨더면서 공룡의 불법적인 일을 눈감아주려던 이브, 이브를 두고 바람을 피운 박동아(김주헌), 최고은(한지은)이 질색하는데도 계속 들이대는 강강수(오정세).
그래도 어떻게든 사랑에 집중해 볼까 싶지만, 뜬금없이 등장하는 베드신이 몰입을 방해한다. 공룡과 최고은, 박동아와 이브, 강태희와 박동아의 베드신은 감정선의 부재로 한결같이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정점을 찍은 건 아이러니하게 주인공인 이브와 공룡의 베드신. 우주에서 목숨을 걸고 이루어진 베드신은 그간 볼 수 없었던 연출이 더해지며 애틋한 감정이 증폭되기는커녕 아쉬움만 남겼다.
극 전체를 끌고 가는 재벌 MZ그룹 난자와 정자 얘기엔 더 공감이 가지 않는다. 가뜩이나 시청자에게 MZ그룹 며느리는 먼 존재인데, 담당 주치의란 이유로 공룡이 목숨까지 거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심지어 공룡은 최재룡(김응수) 회장이 난자를 들고 우주에 가라고 겁박할 때 “회장님 전 재산 주신대도 안 간다, 아니 못 간다. 아이 두고 흥정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자신이 익시 전문가도 아니라고 거절했던 공룡이었다.
물론 공룡에겐 성공하면 우주난임센터를 건립할 수 있다는 원대한 꿈이 있다. 그러나 그 꿈이 와닿으려면 먼저 공룡이 삶을 대하는 태도나 의사로서 가지는 숙명이 충분히 그려졌어야 한다. 공룡이 태어났을 때부터의 삶은 약 22분여간 주마등처럼 보여준 게 다였다. “매일 여자의 자궁을 보고, 매일 아이를 받았다”, “내가 신은 아니지만 생명을 태어나게 한다는 게 흥분되고 좋았다”, “100번을 받아도 1,000번을 받아도 그때만큼은 내 심장이 뛰었다. 그래서 산부인과 의사가 됐다”로 정리되는 수준.
그러니 공룡이 우주에서 모룰라가 폐기된 후 자신이 고백한 이브에게 “살인자”라고 비난한다거나, 지구에서 모룰라가 최종 폐기될 때 “그렇게 힘들게 왔는데, 왜 사람 손에 죽어야 됩니까? 누구를 위한 윤리입니까. 엄마가 원한다고”라고 오열하며 외칠 때 물음표만 남는다. 마치 마지막 인류라도 죽인 양 사랑하는 이브의 멱살을 잡으며 온갖 악담을 퍼붓는 공룡. 더군다나 합법적인 일이 아니니 생떼로 보일 뿐이다. 엄마라 부르는 이모들에게 웃음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어오라고 등 떠밀었던 공룡이, 모룰라도 생명이라고 울며 부르짖는 공룡이 되었는데, 드라마는 끝까지 설득해 주질 않는다.
1화에서 우주 유영복을 우주비행사 시체로 착각한 공룡은 “우주는 자궁 같다고 생각했는데, 우주는 무덤인 걸까? 태어나는 곳이 아니라 죽어 돌아가는 곳일까?”라고 두려움에 떨며, 6화에선 모룰라를 폐기하는 이브에게 “우주는 자궁 같다고 믿었는데, 무덤인 거였냐. 태어나는 곳이 아니라 죽어 돌아가는 곳이었냐”고 분노한다. 그리고 마지막회에서 이브가 죽고난 후 “우주는 무덤이자 자궁이 되어주었다”고 깨닫는다. 공룡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주는 그냥 우주이며, 별들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고.
남금주 기자 ngj@tvreport.co.kr / 사진=tvN ‘별들에게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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