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韓영화 결산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명장들의 흥행 참패
[TV리포트=김연주 기자] 내로라하는 감독과 배우의 조합도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한 한 해였다. 기대는 곧 실망으로 돌아왔고 쓰라린 성적과 적나라한 혹평만이 남았다.
■ 韓 영화 ‘유령’, ‘교섭’…외화에 뺏긴 자존심
2023년의 시작을 알린 이해영 감독의 ‘유령’, 임순례 감독의 ‘교섭’은 설 연휴 대전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아쉬운 흥행 기록을 남겼다.
영화 ‘품행제로’,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의 각본을 집필, ‘천하장사 마돈나’를 시작으로 ‘독전’까지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을 입증한 이해영 감독에게 ‘유령’은 쓴맛을 안겼다. 지난 1월 18일 개봉한 ‘유령’은 동시기 개봉작 ‘교섭’, ‘더 퍼스트 슬램덩크’, 장기 흥행작 ‘아바타: 물의 길’에 밀려 박스오피스 중하위권에 머무르는 데 그쳤다. 제작비 137억 원으로 약 300만 관객을 돌파해야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던 ‘유령’은 일일 관객 수를 5만 명도 넘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사 이후 호불호가 명확한 영화라는 평가와 함께 실 관람객들의 미지근한 반응이 이어졌다.
임순례 감독과 배우 황정민, 현빈이 의기투합한 ‘교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 ‘세 친구’로 데뷔한 이후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리틀 포레스트’ 등을 통해 여러 갈래의 감동을 선사한 임순례 감독이 연출한 ‘교섭’은 개봉 전 기대감을 증폭시켰으나 더딘 흥행 속도로 손익분기점을 돌파하지 못했다.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작품 속 순한 액션은 심심한 액션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밖에도 누아르 장인이라 불리는 박훈정 감독이 지난 6월 내놓은 신작 ‘귀공자’는 68만 관객을 동원한 뒤 씁쓸하게 퇴장했다. 사생활 논란으로 휴식기를 가진 배우 김선호의 복귀작이자 스크린 데뷔작으로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지만, 박훈정 감독의 전작 ‘신세계’의 벽은 높기만 했다. 난해한 세계관, 현실과 동떨어진 전개가 흥행에 발목을 잡았다.
■밀수만 웃었던 여름, 천만 감독들의 굴욕
극장가 최고의 성수기로 꼽히는 여름 시장엔 영화 ‘밀수’, ‘비공식작전’, ‘더문’, ‘콘크리트 유토피아’까지 이른바 텐트폴이라 칭하는 한국 영화 대작 4편이 잇따라 개봉했다. 결과적으로 류승완 감독의 ‘밀수’만 웃을 수 있었다. 4편의 영화 가운데 가장 먼저 관객을 만난 ‘밀수’는 빠른 속도로 손익분기점인 400만을 넘어서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
두 번째 주자로 나선 ‘비공식작전’, ‘더문’은 나란히 참패를 기록했다. ‘킹덤’, ‘끝까지 간다’, ‘터널’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과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를 통해 케미를 선보였던 배우 하정우, 주지훈 조합에도 관객의 반응은 냉랭했다. 유쾌함과 유치함이라는 극명한 호불호 앞에서 외면을 당하고 말았다. 누적 관객 수 105만 명, 손익분기점 600만 명은 고사하고 100만 명도 겨우 모았다.
‘더문’의 성적은 더 처참했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로 쌍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안은 김용화 감독이 선보이는 한국형 SF물로 280억 원의 대자본이 투입된 작품이었으나, 일일 관객 수 1만 명을 채우는 것조차 버거웠다. 문제는 신파였다. 손과 발이 오그라드는 감정선은 이 영화의 혹평 포인트였다. 일각에선 ‘신과 함께’ 세계관과 충돌한다는 신랄한 평가를 내놨다.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기세를 잡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오펜하이머’가 동시기 개봉하면서 관객이 분산되는 불운이 따랐다.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을 넘겼지만, 호평세례에도 더딘 흥행 속도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김지운·강제규·정지영, 공감 얻기 실패
추석 연휴 극장가는 그야말로 대접전이었다. 배우 강동원 주연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부터 영화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를 연출한 강제규 감독의 감동 실화극 ‘1947 보스톤’, 김지운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다섯 번째 합작 ‘거미집’이 같은 날 개봉하면서다.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감독과 쟁쟁한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들의 출격이었다.
“다 같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이들의 바람은 그저 바람에 그쳤다. 관객들은 냉정했다. 극장가 대목으로 꼽히는 추석 연휴였지만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 강제규 감독의 ‘1947보스톤’은 연휴 기간 동안 100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감독의 고뇌를 담은 ‘거미집’은 가족 단위 관객에게 선택을 받기엔 소재가 다소 무거웠고, ‘1947 보스톤’은 오히려 감동이 절감되는 신파로 외면당했다.
데뷔 40주년을 맞은 정지영 감독의 신작 ‘소년들’은 11월을 여는 한국 영화였다. ‘한국 영화계의 명장’으로 불리는 정지영 감독의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 금융범죄 실화극 ‘블랙머니’를 잇는 실화극 3부작으로 포문을 열었지만, 트렌디함이 부족했다. 올드하다는 혹평이 이어졌고 결국 소리 소문 없이 극장가를 떠나게 됐다.
코로나19 이후 큰 타격을 맞은 극장은 일상이 회복된 이후에도 여파에 시달렸다. 올 한 해 또한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 속했다. 명감독도, 명배우도 흥행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전의 흥행 공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여기에 티켓값 1만 5000원 시대, OTT의 성장이 맞물리면서 극장의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호재도 있다. 영화 ‘범죄도시3’가 올해 상반기 1000만 관객을 달성한 데 이어 현재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이 적수 없는 흥행 질주로 극장가에 활력을 더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세를 이어 받아 오는 2024년엔 영화인들의 바람처럼 한국 영화가 ‘다 같이 잘 되는’ 상황을 기대해 볼 뿐이다.
김연주 기자 yeonjuk@tvreport.co.kr / 사진= 각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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