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도 찾아 조문한 ‘김기남’ 고문, 뭐하던 사람인가 봤더니…
김기남 노동당 고문
3대째 선전 대부로 알려져
내각 결정 따라 국가장 결정
지난 8일 북한 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체제 선전을 주도하며 ‘북한의 괴벨스’로 불렸던 김기남 전 노동당 선전·선동 담당 비서가 94세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남 고문의 장례식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장으로 치르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김기남 고문의 정체에 관해 관심이 주목된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2022년 4월부터 노환과 다장기기능부전으로 병상에서 치료를 받아오던 김기남 동지가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2024년 5월 7일 10시 애석하게도 94살을 일기로 서거했다”고 알렸다.
이어 고인의 시신이 평양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에 안치돼 8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조문을 받고 9일 오전 9시 발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기남 고문 장례식의 국가장의위원장을 맡은 김 위원장은 8일 오전 2시 고인의 빈소를 찾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은이 직접 국가장 위원까지 맡은 김기남 고문은 1929년 2월생인 김기남은 북한 역대 최고지도자 우상화의 최일선에 있던 인물로 알려졌다.
북한 내에서 최고지도자 우상화를 중심으로 한 역사 서술이 국가 및 체제 유지와 밀접하게 연계된 핵심 직책을 모두 거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임을 받아왔다.
이후 1970년부터 당 중앙위 기관지인 ‘근로자’와 ‘노동신문’의 책임 주필을 지냈으며 1985년 당 중앙위 선전부장, 비서, 당 역사연구소장을 맡은 바 있다.
비교적 최근인 2010년부터는 당 중앙위원회 비서 겸 선전선동부장, 고문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한국에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김기남 고문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김정일 국무위원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지난 2005년 8·15 민족대축전 참가차 서울을 방문했을 때 북측 당국 대표단 단장으로서 31명의 대표단원과 함께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에도 북한 특사 조의 방문단 단장으로 남측에 방문한 주요 인사 중 한 명이었다.
김기남의 사망으로 인해 출생지가 처음으로 공식 확인되며 우리 정부 공식 북한 정보 데이터베이스인 ‘북한 주요 인물정보’에 김기남의 출생지를 ‘함경남도 금야군’으로 기재했지만 이날 북한 측의 공식 발표에 따라 수정될 전망이다.
북한 내에서 김기남의 입지는 그 위상이 대단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유는 김기남 고문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치적 멘토’라고 불리며 지난 201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구차를 호위한 7명 중 처벌당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살아남은 두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3대 세습 체제의 틀이 김기남 고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김씨 일가의 세습에 막대한 영향을 준 인물로 추측된다.
김씨 일가 세습의 틀을 마련한 김기남은 김정은 집권 후에도 직위를 유지하다가, 지난 2017년 10월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 때 주석단 명단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기남 고문은 북한 체제를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묶어내는 핵심 역할을 하고 대외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이어 지난 2016년 미국의 북한 인권 제재 대상에 이름을 올린 이후 한국의 독자 대북 제재 대상으로 선정된 바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