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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훌쩍 진주성 전투 – 실시간 베스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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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전투는 총 두차레에 걸친 전투가 있었다.

바로 진주대첩으로 알려진 1차 진주성 전투와 일본의 복수혈전인 2차 진주성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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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에게 진주대첩으로 잘알려진 1차 진주성 전투)

1차 진주성 전투당시 일본군의 규모는 대략 2만~3만명 사이로 추정되고 조선군의 규모는 4000명 정도로

추적된다.

5일동안의 혈전끝에 일본군은 진주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철군했고 그로인해 조선군의 승리로 끝났다.

1차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군의 전사자가 얼마인지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1차 진주성 전투에 대한

사상자를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군 사료를 통해서 1차 진주성 전투에서 발생한

일본군 전사자수를 대략적으로 추측할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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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진주성전투에 참전이 확실한 일본측 지휘관의 소속 병력의 참전 병력수는 총 `10500명이고 이중에서 

사망자는 3900명으로 사망률이 39%에 달한다.

이것을 근거로 하고, 1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한 일본군 참여병력이 2만~3만명이라고 가정하면, 일본군은

이 전투에서 8000명에서 1만명 사이 정도가 전사한 것으로 추측할수 있다.

그 다음으로 1차 진주성 전투가 끝나고 대략 8개월 뒤에 일어난 전투가 2차 진주성 전투이다.

2차 진주성 전투는 1차때의 패전으로 분노한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시작된 전투는 8일동안 계속된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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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복수혈전으로 시작된 2차 진주성 전투)

8일동안 전투끝에 동쪽성벽과 북쪽성벽이 무너졌고 이이다 카쿠베에, 모리모토 카즈히사 등의 장수들이

성벽을 가장 먼저넘어서 마침내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전투는 결국 조선군의 패배로 끝났고 조선측은 이 전투에서

황진, 최경희 등 여러 장수들을 잃었고 일본측 역시 전투 마지막날 깃카와 히로이에의 부장인 스후 모토모리가 전사하는등 여러 용장들이 전사했다.

전투가 1차때보다 훨씬더 긴 8일동안 지속되었다는 점등을 통해서 일본측 역시 적지않은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역시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알수없지만 두 차레에 걸친 진주성 전투가 모두 끝나고 강화협상으로 온 일본측 사절의 말을 

통해서 추측해볼 수는 있다.

갑오년(1594년) 강화(講和) 때에 왜인이 말하기를, “진주성 싸움에서 죽은 장관이 3백, 군병이 3만이니, 반드시 그에 대한 보상이 있는 뒤에야 강화를 의논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은 공갈치는 데에서 나온 것이니 반드시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으나, 또한 어찌 아무런 근거없이 한 말이겠는가

부계기문(涪溪記聞) 

이 사절이 한말이 무조건  확실하다고는 볼수 없지만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두 차레에 걸친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군의 전사자는 3만이고 전사한 장수는 300명이라고 볼수있다. 1차 진주성 전투당시 일본측 전사자를 8000~

1만명으로 추청하면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측 전사자는 2만명 이상이라고 볼수있다.

다음으로 조선측은 1차 전투때는 조선측의 대승으로 끝났다.

전투 막바지에 진주성의 목사인 김시민이 총에 맞고 전사하기는 했지만 조선군의 피해는 일본군의 피해에

비해서 훨씬 경미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2차때는 조선측의 패배로 끝났고 최경희, 황진등 여러 장수들을 잃었고 성안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전부다 성이

함락되면서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측 기록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6만명의 주민들이 성안에 있다고 죽었다고 하고 일본측 기록인 다이코기와 도사모노카타리에 의하면 일본군의 칼과 총에 의해

살해된 조선인이 1만 5000명 그밖에 스스로 강물에 뛰어들어 죽은 조선인이 2만 5000명 총 4만명에 달하는 진주성이 주민들이 성이 함락되면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다른 일본측 기록인 음덕태평기에 의하면 진주성안에 총 3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있으며 성이 함락되면서 이들 거의 대부분이 피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적이 본성(本城)을 무찔러 평지(平地)를 만들었는데 성 안에 죽은 자가 6만여 인이었다. 【어떤 이는 8만여 인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3만여 인이라고 한다. 뒤에 감사 김늑(金玏)이 사근 찰방(沙斤察訪) 이정(李瀞)을 시켜 조사하게 하였는데 성 안에 쌓인 시체가 1천여 구(軀)이고, 촉석루에서 남강(南江)의 북안(北岸)까지 쌓인 시체가 서로 겹쳤으며, 청천강(菁川江)에서부터 옥봉리(玉峯里)·천오리(遷五里)까지 죽은 시체가 강 가득히 떠내려갔다. 】 성이 함락된 뒤 적은 군대를 몇 기(起)로 나누어 1기는 단성(丹城)·산음(山陰)을 향해 출발하여 지리산(智異山)으로 들어가고, 1기는 바로 본주(本州) 서면(西面)으로 나아가서 지리산으로 간 적과 합세하여 구례(求禮)·광양(光陽)·남원(南原)·순천(順天) 등지로 흩어져 들어가서 마을을 노략질하였다.


조선측 기록에 의하면 3만에서 8만 사이며 일반적으로 6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깃카와 히로이에 군주의 여러 병력도 강을 건너 적을 토벌하였다. 도주하는 적을 벤 것이 153급, 강의 앞 기슭에서 목을 벤 것이 500 수급이였다.

또한 우키다 히데이에의 수하 우키다 가와치카미의 2천여 기가 강의 거넌편에 보내져 있었는데, 이들도 도주하는 적을 토벌하여 300 수급을 베었다.

진주성에 있었던 조선인은 3만명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죽었으며 무사히 강을 건너 도망간 자들은 400, 500명 정도이다.

음덕태평기(陰德太平記) 78권

반면 일본측 기록에는 조선측 기록의 절반정도인 3만명 정도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단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의 면적은 40만 m2 로 면적이 64m2 인 남원성보다 작은 성이다. 남원성 전투당시 남원성에 있었던 군민들이 대략 만명정도였다는걸

감안하면 남원성보다 작은 진주성에 6만명이나 되는 인원을 수용하기는 힘들며 이것을 실제 가용면적을 감안할 경우 1인당 5m로 거리로는 2.2.m마다 1명 정도의

공간만 나오기 때문에 6만명이나 진주성안에 있었다면 현실적으로 효율적인 전투수행이 굉장히 어려워지고 이 상황에서 8일동안 일본군과 전투를 치루었다고 하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진주에 인구는 5900명으로 물론 세종시대와 선조시대는 150년 정도의 차이가 있고 당시 인구조사가 정확하지 않았다는 점을 파악해도

6만이나 되는 수치는 단순히 진주지역 전체에서 나오기 힘든 인구이며 진주지역 뿐만 아니라 그 주변 모든 고을들과 속현들을 다 포함한 수치기 때문에(단순히 진주지역 인구만 파악할 경우 3만 정도이다.) 10만에 달하는 대규모 일본군이 진주성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진주 주변 지역 주변 모든 고을들의 주민들이 전부다 진주성 안으로 밀려들었다는건 비현실적이며 실제로 전투 발생 직전 권율의 명으로 전라도 관군이 성내를 빠져 나가고 있는 상황이였고 당시 진주성 안에 있었는 조선관군은 거의

다 전멸당해서 조선측은 성안에 있는 인원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밖에도 실제로 학살에 대한 공포로 실제 학살 규모보다 훨씬더 크게 부풀려지는 경우는 세계사적으로도 흔하다.) 실제로 진주성에서 직접 전투를 치루면 성안을 직접 함락한 일본측이 남긴 기록이 더 정확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특히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 내린 모든 진주성의 주민들을 학살하라고 내린 명령으로 인해 당시 진주성의 주민들을 죽이는건 일본군 입장에서 자신들의 공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는 굳이 6만명을 죽인것을 3만명이라고 축소할 이유도 없다.) 실제로 3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성안에 있다고 성이 함락되면서 모두 몰살을 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결론: 일본입장에서나 조선입장에서나 진주성 전투는 가장 많은 인명손실을 발생한 전투로 일본측과 조선측 각각 대략 3만명 정도가 진주성 전투에서 죽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 싱글벙글 지구촌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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