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벙글 대한민국의 독립에 가장 기여한 인물 TOP 10 – 실시간 베스트 갤러리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미국의 32대 대통령.
맨해튼 프로젝트를 승인한 인물이다.
1939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편지를 받은 후, 나치 독일이 원자폭탄을 개발할 가능성을 우려하여
프로젝트의 초기 자금 조달을 승인했다.
1942년에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도록 지시했으며,
원자폭탄의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다.
해리 S. 트루먼 (Harry S. Truman)
미국의 33대 대통령.
루스벨트의 사망 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아 맨해튼 프로젝트의 최종 결정을 내렸다.
맨하탄 프로젝트 과학자들이 성공적으로 원자폭탄을 개발한 후, 그 무기를 일본에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명령을 승인했으며,
이 결정은 곧 참혹한 2차 세계 대전의 종전으로 직결되었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미국의 물리학자.
맨해튼 프로젝트의 최고 책임자로서,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재를 채용하였고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소장을 맡아 원자폭탄 개발과 그 진행을 총괄하였다.
닐스 보어 (Niels Bohr)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192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원자 구조를 제안하고 양자론의 기초를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핵분열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였다.
플루토늄과 우라늄-235의 핵분열 메커니즘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며,
원자폭탄의 설계에 대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리처드 파인만 (Richard Feynman)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폭발성 반응의 계산과 시뮬레이션을 담당하였다.
로스앨러모스에서 컴퓨팅 부문을 지원하며,
계산기와 초기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해 폭발에 필요한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였다.
한스 베테 (Hans Bethe)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196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이론 물리학 부서를 이끌었으며,
폭발 메커니즘과 핵분열 반응의 계산 작업을 수행하였다.
특히 폭발력과 관련된 중요한 이론적 계산을 제공해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니스트 로렌스 (Ernest O. Lawrence)
미국의 물리학자. 193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사이클로트론의 발명자로서 입자가속기 개발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또한
우라늄의 전자기 분리법을 개발함으로써, 우라늄-235의 농축을 가능하게 했으며,
로스앨러모스에서 폭탄에 사용될 핵물질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미국의 군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군사적 총책임자로 임명되어,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관리와 감독을 맡았다.
프로젝트의 기획, 자금 조달, 인력 배치, 그리고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와 같은 주요 시설의 건설을 지휘하였으며,
핵물질의 생산과 무기 개발에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고, 프로젝트의 보안을 철저히 관리했다.
또한 미국 국방부 본부 청사인 ‘펜타곤’을 건설하는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미국의 물리학자 이자 193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다.
지속적인 핵연쇄 반응을 실현한 인물이다.
이는 원자폭탄의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중요한 성과로,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을 이끄는 핵심적인 기초를 제공하였다.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폭발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원자폭탄의 폭발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된 ‘내폭 방식’의 개발을 제안하였으며,
이는 폭탄의 핵분열 물질을 동시에 압축하여 임계 질량을 달성하는 방법으로,
이를 통해 폭발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또한 수학적 모델링과 고급 계산 기술을 사용하여 폭발 메커니즘을 분석하였다.
폭발 시 발생하는 물리적 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계산하는데 필수적인 수학적 도구를 제공하였다.
출처: 싱글벙글 지구촌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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