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이 업계 1위 찍고 잘나가던 ‘OB맥주’ 버린 현실 이유
두산그룹 주류 사업
OB 맥주 그룹의 모태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국내 최장수 기업으로 꼽히는 그룹은 삼성, SK, LG, 현대 등 현재 재계를 주름잡고 있는 4대 기업 집단이 아닌, 서울 종로에서 ‘박승직 상점’으로 시작한 두산그룹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1896년 구한말 시기 창업주 박승직이 종로에 가게를 열며 국내 최장수 기업으로 꼽힌다.
다만, 일각에서는 두산그룹이 중간에 업종 변경을 통해 정통성을 잃었다며 동화약품을 최장수 기업으로 꼽는다. 그렇다면 두산그룹은 중간에 왜 업종을 변경했을까? 당초 두산그룹을 이끄는 사업은 현재 두산그룹의 주 사업으로 널리 알려진 중공업 분야가 아닌 소비재 중심 산업이었다.
이 중 특히 주류 사업에 대한 두산그룹의 집념과 열정은 대단했다. 박승직 상점으로 출발한 두산그룹은 창업주의 장남이었던 박두병 초대 회장을 통해 ‘한 말 한 말 쌓아 큰 산을 이룬다’는 의미를 담은 ‘두산 그룹’으로 거듭났다. 이후 1950년대에 들어 무역업을 시작한 두산그룹은 1952년 동양 맥주(現 OB맥주)를 설립하며 소비재 중심의 기업으로 거듭났다.
당초 두산그룹은 OB맥주의 전신인 1933년 설립된 일본 자본 기반의 소화기린 맥주를 해방 이후 인수하며 동양 맥주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다. 이후 동양 맥주를 뜻하는 Oriental Brewery의 앞 글자를 따서 오비맥주를 만든 두산은 1933년 맥주 생산을 시작했다.
당시 OB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70%로 국내 맥주 사업을 이끌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서며 처음으로 생맥주를 시판하고 홉을 재배하는 등 맥주의 대중화에 기여했으며, 1965년 ‘맥주 판매 100만 상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에 따라 1971년 추가 증설로 생산라인에 최신 설비를 도입하고 10년가량 빠르게 주류 사업에 진출한 하이트진로의 전신 ‘조선맥주’를 이기고 주도권을 잡는 등 놀라운 성과를 자랑했다. 특히 OB맥주는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기와 맞물리며 맥주 소비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화려한 성장세를 보였다. 또한, 이후 출시한 ‘카스’ 역시 큰 인기를 끌며 현재까지도 그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다만, 두산그룹은 지난 2001년 잘나가던 주류 사업을 포기하고 미래 성장 엔진으로 중공업을 택하며 OB맥주를 매각했다. 이는 지난 1991년 구미시에서 두산전자가 낙동강에 페놀 약 31.3톤을 유출하며 낙동강 라인인 대구 및 경북, 부산 및 경남 지역으로부터 두산 불매 운동이 시작된 영향으로 보인다.
당시 큰 위기를 맞은 두산그룹은 OB맥주 외에도 코카콜라, 버거킹, KFC 등 소비재 사업을 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 전반에 악영향을 받았으나, 이 중 100여 년을 이어온 OB맥주가 직격탄을 맞게 된다. 당시 두산은 주류사업을 영위하며 ‘물맛’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으로 인해 이미지 타격은 물론, 경쟁사였던 크라운맥주가 이를 겨냥한 듯 천연암반수를 강조한 하이트를 출시하며 업계 1위 자리를 내줬다.
이어 불매운동으로 인해 매출이 곤두박질치며 이미지 개선에 돌입했다. 박용곤 회장은 이를 위해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두산 종합기술원을 세워 새 경영이념을 선포하는 등 이미지 개선에 박차를 가했으나 이는 쉽지 않았다.
실제로 1995년 두산그룹은 적자 규모 9,000억 원, 부채비율 625%에 달하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를 타개한 이는 박용곤 회장의 동생이었던 박용오 회장이다. 그는 취임 이후 그룹의 뿌리나 다름없는 소비재 사업을 버리기로 택했다. 당시 가족들의 반대로 인해 박용오가 회장 자리에서 퇴출당하고 형제끼리 비자금 조성과 탈세로 고발하는 등 난타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형제들 간의 싸움은 미국 투자 컨설팅 업체 매켄지의 권고를 기점으로 마무리됐다. 당시 매켄지는 두산그룹을 향해 “지금 이 상태로라면 3개월 안에 그룹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때에 따라 OB맥주를 매각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장남이었던 박용곤이 맥주를 비롯한 소비재 산업에서 그룹의 철수를 결정했다.
결국 두산그룹은 OB맥주를 비롯해 코카콜라, 버거킹, 3M 등의 계열사를 모두 철수했다. 그러나 현재 두산그룹의 이 선택은 ‘가장 탁월한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두산그룹은 인수합병과 함께 OB맥주의 지분 50%를 매각하고 코닥, 네슬레 등의 처분을 통해 빚을 갚았다. 이어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찾아온 IMF 당시 두산그룹은 OB맥주의 매각을 통해 현재까지 큰 타격 없이 그룹을 이끌어 올 수 있었다.
특히 박용만 회장은 OB맥주의 매각을 두고 “두산의 구조조정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고 밝히며 “물려받은 것은 OB맥주라는 브랜드나 맥주 공장과 같은 실체가 아니라 기업 철학”이라며 “실체를 지키려고 했다면 오늘날 두산그룹은 없었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두산그룹은 현재 중공업 분야를 필두로 작지만, 단단해진 경쟁력으로 지난 2022년 기준 재계 서열 16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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