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에 버금가는 하드 모드 인생을 살아온 민족(feat. 현재 진행형) – 실시간 베스트 갤러리
바로….
화교.
이들은 역사적으로 가는 곳마다 차별과 박해를 받아왔다. 그 기구한 역사를 되돌아 보자.
1603년 필리핀 루손 섬
17세기 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받던 필리핀에서는 혐중 정서가 심각했다. 당시 필리핀에 거주하던 화교들의 숫자는 스페인인들의 5배에 달했으며 이들은 상권을 장악하고 스페인인들을 포함한 주변 소수민족들을 옥죄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화교 탄압 정책을 펼쳐 이들을 다른곳으로 이주 시켰고 이에 반발한 화교들이 폭동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 당하고 1만 5천명 에서 2만명 가량의 화교들이 스페인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이때 그곳에 거주하던 일본인들과 필리핀 원주민들 역시 학살에 동참했다고 한다.
1871년 10월 24일 미국 로스 앤젤레스
미국의 혐중정서는 19세기 화교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시작되었다. 사건 하루 전날, 화교들 끼리의 분쟁에 휘말린 현지 경찰관과 농부가 총에 맞아 사망했고 이에 격분한 500명 가량의 시민들이 화교 밀집 지역으로 몰려가 약탈과 방화를 시작했다. 이날 19명의 화교들이 살해 당했고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집단 린치 사건으로 남아있다.
1885년 미국 와이오밍 주 락 스프링스
와이오밍에서 일어난 유럽인 이민자들에 의한 화교 배척 사건으로 고용주인 유니언 퍼시픽 석탄 회사가 싼값에 화교 노동자들을 대거 고용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유럽인 노동자들이 화교들을 습격해 28명 이상이 살해 당하고 15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78개의 건물이 불에 탔다.
1887년 5월 27 – 28일 미국 오레건 주 헬스 캐니언
34명의 화교 광부들이 습격 당해 살해 되었고 시신들은 인근 강에 버려졌다고 한다. 위 사진은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2005년 Chinese Massacre Cove 로 개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31년 평양
산둥성에서 유입된 다수의 화교 상인들 및 하층 노동자들과 조선인들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해 7월 3일 인천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화교 배척 운동이 일어났다. 이중 가장 큰 규모는 평양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도합 142명이 살해 당하고 546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1969년 5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오래전부터 갈등의 골이 깊었던 말레이인들과 화교들의 문제가 1969년 말레이시아 총선 이후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으로 공식 사망자수는 169명부터 600명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말레이시아의 초대 총리가 사임하는등 사회적 파장이 컸다.
1998년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부터 인도네시아인들을 착취해온 역사가 있는 화교들이 자본을 독점하는 상황에 불만이 커져가던 와중에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가 터지며 그야말로 폭발해 버렸다. 자카르타에서 시작된 폭동은 전국으로 번졌고 화교들이 집중 공격 당하며 약탈자 본인들을 포함한 1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외에도 더 많지만 이정도만 보도록 하자.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출처: 대만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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