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건국신화 유적도 무시 못하는구나 – 실시간 베스트 갤러리
조선후기 때 문중들이 왕릉들을 워낙 자기들 멋대로 비정한 게 많아서 나정도 그런것의 연속선상에 있던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품었던 것이 사실임. 헌데 보수정비 과정에서 팔각형 기단이 발견되고 발굴이 시작됨.
조선시대 우물터로 비정되었던 곳엔 우물이 없었지만 근처 4~5m 위에 실제 우물터로 확인되었고 그 주위로 목책을 두른 흔적이 확인됨.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초기 철기 시대로 추정. 이것이 가장 먼저 들어선 1차 시설. 삼국사기에는 남해차차웅이 서기 6년에 시조묘를 세웠다고 적혀있음.
팔각형 기단, 날생자가 적힌 기와 100여점, 의봉4년(679년)이 적힌 와편이 발견 됨. 연대가 적힌 와편으로 문무왕 때 새로 지은 신궁이라는게 밝혀짐. 이것이 3차 시설임. 최소한 문무왕 시대에는 이 지역이 성역화 되어 있다는 것을 고고학적으로 알 수 있음. (2차 시설은 삼국사기의 기록대로라면 487년인데 사실이라면 후대에 문무왕이 신궁을 재정비하면서 유구들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됨)
최근에 기단도 정비 해 놓음. 경주가 이런 건국 신화와 관련된 유구도 고고학적으로 발견되는 점이 다른 한국의 고도들과는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거 같음.
출처: 위진 남북조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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