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아닌 여자와 단둘이 북한산
학교에서
사모바위도 백운대도 다 가봤다고 자랑을 했었나봐요.
근데 자기 말고도 백운대 가본 아이들이 몇몇 있었나봐요.
그래서 제가
북한산은 의상능선이 제일 힘들어
의상능선 타본 친구는 없을거야.
라고 말한번 잘못꺼냈다가
몇주째 자기도 의상가겠다고 노래를 하고…
의상으로 갑니다.
형님들 관점에서 보시면 안됩니다.
어린 여자아이 관점으로…
동이 터오를 무렵 출발합니다.
엄마꺼 기능성 티, 바지를 입었음ㅎㅎㅎ
(신발 네파에서 등산화로 산 나름 2보아 시스템 등산화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ㅎㅎ;)
날이 춥습니다.
이제 거의 다 떨어져버린 단풍잎들이 반겨줍니다.
등산 정석식사 김밥을 주문하고
아침으로 라면을 먹습니다.
어휴 건강생각해서 국물은 좀 남겨야지 이녀석아!
잘 보시면 저는 국물 남겼음.
애들은 라면에 환장을 합니다.
어머 아직도 이쁜 단풍이?
의상으로 진입합니다.
딸내미에게 엄중경고 합니다.
으른들도 뒤져나가는 곳이라고
시작하면 빠꾸는 없다고.
등산 시작 5분만에 아빠 패딩 넣어줘
별거없을줄 알았는데 당황스럽지?
스스로해내라.
도와주는거? 그런거 없습니다.
참고로 저 배낭에는 물티슈, 티슈, 지가 좋아하는 o2인가 이온음료.
제 60L 배낭에
스틱 두쌍
제꺼 패딩, 아이 패딩
김밥
포카리스웨트 2텀블
보리차 2텀블
등갤 공식 간식 샤인방울바나나 다량
비상용 단백질바 2개
패딩 두개만으로 뻑뻑함
스틱 두쌍이 겁나 번잡스러움
아빠 패딩 꺼내줘, 아빠 패딩 넣어줘
아빠 패딩 꺼내줘, 아빠 패딩 넣어줘
… 무한반복
진짜 저 죽겠습니다. ㅠㅠ
의상능선은 토끼바위 왔으면 다한거죠 뭐(?)
자! 이제 하산이다!
우려했던것보다 잘 올라감
사령부 전망이 트이는순간입니다.
아마 죽는날까지 수천번 다시봐도 감동받을 풍경입니다.
옆에 천길 낭떨어지인데 사진찍을땐
알아서 멋지게 포즈를
드디어 첫번째 봉우리 의상봉에 오릅니다.
그 누구보다 의상능선을 많이 탔다고 자부하는 저이지만
이날은 봉우리 봉우리 모두가 큰 감동이였습니다.
용출봉도
용혈봉도 씩씩하게
너무 대견스럽고 기특했습니다.
의상능선에 중독되는 이유가
오르다 뒤한번 돌아보면
두눈에 그리고 가슴에 가득차는 멋있는 풍경들
예전에 나월봉 아랫길 조심해야하는데 방심해서 엄청 크게 나자빠져서 죽을뻔했는데
나무에 부딪혀 나무가 저 살리면서 뿌리까지 뽑혔다고 얘기해줬는데
제가 넘어졌다는 얘기가 재밌는지 깔깔깔 거리더군요 ㅎㅎ
나한봉에서 김밥드시던 나이많은 어르신이
의상능선을 탔으니 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어요.
돌아서는길 인사드리는데 자세 바로 잡으시면서
들어가세요
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있으셨습니다.
딸아이에게 저 할아버지처럼 멋있게 늙겠다 다짐했습니다.
하늘이 정말 기가 막히게 예술이였습니다.
요근래 연속적으로 멋진 하늘과 함께하는 산행입니다.
그래서 10월 11월은 닥치고 산행입니다.
드디어 문수봉에 도착했습니다.
ㅡ앞에 있는 아름다운 보현봉은 북한산의 주봉이며
한반도의 제1봉우리로 백두대간의 모든 정기를 흡수하는 봉우리다ㅡ
열심히 설명해줬는데 듣지도 않음
김밥 김밥 노래만 부름
그래 나도 배고프당
장엄한 문수봉 아래서 먹는 김밥 맛이라는게…
아빠 패딩 꺼내줘…
형님들 전에 말씀안드렸는데
문수봉 내려오는 초반 게걸음으로 완전 조심해야했던 마지막남은 위험했던 구간…
네 철기둥 심어 버렸습니다.
이제 문수봉 어려운 구간은 스릴이 살짝 있다뿐이지
모든구간 안전합니다.
그래도 조심조심 또 조심!
무섭지? 무섭지? ㅋㅋ
문수봉 어려운 구간 완료!
형님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이런 구간이랑 오는길 4발로 기어야 하는 상황이 나오면
저는 스틱 4개를 한손에 쥐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ㅠㅠ
아이가 많이 지쳤나봐요. 좀만가도 쉬려하네요.
그럼 저는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봅니다.
기가 막히게 멋집니다.
통천문도 지나가주고
왼쪽에 쇠봉잡고 오르는 길이 있지만
옆으로 오르게 해봅니다.
어렵고 위험하지만 너무 재밌어 합니다.
그리고
해봐야 합니다.
그렇게 승가봉에 오르고
사모바위를 지나서
비봉만큼은 로프도 쇠봉도 없죠.
정말 너무 재밌고 스릴넘치죠.
코뿔소바위 인증샷 줄이 너무 길어요.
걍 아래서 한컷!
차마 비봉비석에 오르게는 못하겠더라구요.
위험하니 나중에 중학생되면 올라가라 했습니다.
마지막 식량 단백질바
아빠 패딩꺼내줘
드디어 관봉을 넘어 향로봉까지 왔습니다.
지루한 하산길이 시작됩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약 50명 이상의 어른들에게
지나치며 질리도록 칭찬을 받았습니다.
칭찬들 하시다가 제가 옆에서
“얘 지금 의상타고왔어요”
하면 칭찬에서 탄성 고함으로 바뀌곤했습니다.
“이야~ 아저씨도 의상타면 퍼지는데~”
“의상능선타고 비봉능선까지 탔다고?”
지루한 하산길
비상비상비상 비상!
향로봉 깔딱고개 내려오고서 퍼져버림
넉다운…
사실 문수봉쯤부터 다리가 후들거렸나봐요.
탕춘대로 내려가자고 설득했지만
자기는 오늘 족두리봉을 반드시 가봐야겠다네요..
제 딸 맞습니다.
아이가 쉴때면 말없이 하늘을 바라봅니다.
너무 멋있습니다.
사실 산행을 빨리해치워야지 시간이 길어지면 저두 너무 힘든게
이시간이면 진즉에 욕조 들어가서 유튜브 보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 어찌됐든 계속 서서 걷는거라..
2차 비상
또 다운
설정샷 아님
쉬겠다고 배째라 드러누워버림
어휴 이녀석…
그냥 저는 하늘 바라봅니다.
ㅎㅎㅎ
그렇게 지루한 구간을 한참지나
가방스틱 아래에 다 내던져놓고
드디어 족두리봉으로 오릅니다.
뒤에서 보면 쪼끄만게 어케어케 기가막히게 쭉쭉 잘올라감
내딸임
백운대 처음 올랐을때보다
10배는 더 기뻐하는
이 감동적인 순간
까마귀들도 날아오르며 반겨줍니다.
불평불만도 하나없이
너무 기특합니다.
하지만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족두리봉 하산하려면…
정말 많이 지쳐버린 아이
해는 넘어가려 합니다.
그래도 이 아이는 해냈습니다.
너무 많은 분들이 중간중간 마주할때마다
아이에게 칭찬을 너무많이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저 역시 인생에 손에 꼽을 아름다운 추억을 또 하나 쌓았습니다.
의상능선을 타고 문수봉에 올라
다시 비봉능선을 타고 족두리봉 찍고 불광역 하산은
어른들에게도 매우 힘든 구간입니다.
등산에 환장해서 사는 등산병자들 등갤형님들 기준으로 보시면 안됩니다.
기특하게 생각해주십시오! ㅎㅎ
저녁에 뭐먹고 싶냐니까 떡볶이를 지명하는 웬수짓을 하길래
이번엔 안된다 나도 살자
낙지집으로 가서 꿈틀거리는 산낙지군단을
초장에 와사비 이빠이 풀어서
폭식했습니다.
앞으로 살면서 이런 기회가 얼마나 자주 있을까 싶어요.
부디 바라건데 수십년후 제가 세상을 떠난후에도
아이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길 소망해봅니다.
출처: 등산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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