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새보] 홍준표가 원래 가려고 한 민주당은 민주당일까?
– [월간새보] 별들의 무덤,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엘리트 보수정당 시절 이라며 올라오는 짤의 주인공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대해 알아보자
2011년은 MB정부 4년차이자, 차기 총선과 대선을 불과 1년 남짓 남겨둔 시점이었다.
따라서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차기 총선의 공천권과, 대선정국이라는 최대의 이벤트를
대응해야 하는 새 지도부를 뽑기 위한 싸움이자
현재권력인 친이계와 미래권력인 친박계가 서로의 주도권을 놓고
영혼의 한타를 벌이는 전장이 되었다.
이 전당대회에서 친이계가 승리한다면, 친이계는 다시금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고
친박계가 승리한다면 몰락하는 친이계에게 결정타를 날리고, 주도권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시기였다.
당시 친이계는 새 대표로 김무성 전 원내대표를 밀고자 하였다.
김무성은 친박핵심으로 유명하였으나 세종시 수정안 사태 당시 원안을 고집한 박근혜와 달리
수정안을 지지하며, 박근혜와 멀어졌고, 이후 친이계의 지지를 업고 원내대표에 당선되며
친박계에서 비박계로 갈아타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무성을 내세운다는 것은 사실상 친이계가 친박계에게 전면전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김무성 카드를 포기했고, 결국 김무성은 차기 전당대회에 불출마 한다.
친이계는 나경원과 원희룡 중에 선택해야 했고, 나경원이 출마를 머뭇거리는 사이
원희룡이 출마를 결정하면서 원희룡으로 청와대의 의중은 교통정리가 완료된다.
나경원은 친이계와 쭉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친이계가 주도권을 잃어가자
점차 친이계와의 거리를 두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기에 선택지에서 배제당한다.
그러나 나경원은 당시기준 호감(?) 정치인이었기에 민심을 등에 업고
전당대회에 출마한다.
그렇게 친이계 후보는 원희룡과 나경원으로 결정된다.
반면 친박계에서는 유승민 카드를 내세워 사실상 단일후보로 추대하며, 친이계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던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남경필을 후보로 내세우며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친이VS친박VS소장파 간의 3파전이 될 것 같아만 보였다.
그러나 친이계와 친박계의 혈투 속에서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던 것은
친이계와 친박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던 홍준표였다.
유력주자인 원희룡, 나경원, 유승민은 당시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뉴비였기에
선수가 높고, 경험이 많던 홍준표가 치고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홍준표는 그간 범친이계로 불리고 있었느나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박계에 대한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하며, 친박계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는
당시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1인 2표제 였기 때문이다.
친이계는 친박계 후보를 막기 위해, 친박계는 친이계 후보를 막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2번표를 무계파였던 홍준표에게 몰아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운명의 날은 밝아왔고,
친박계가 밀어준 홍준표와 유승민이 당심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친박계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친이계가 지원한 원희룡은 4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보여줬고
나경원은 당심에서 참패했으나 민심을 등에 업고
친이계가 지원한 원희룡을 제치고 3위로 당선되는 기염을 보여준다.
또한 소장파의 지지를 받은 남경필이 턱걸이로 당선되며
한나라당의 변화를 보여주는 모습으로 평가 받았다.
개혁보수인 친박계(진짜임)와 소장파 의원들이 대거 지도부에 합류했고,
평소 친서민 정책을 펼치던 홍준표(진짜임)가 대표에 당선되었으며,
좌클릭을 주장하던 황우여 원내대표(진짜임)이 이끄는 새 한나라당 지도부는
보수정당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그렇게 변화된 한나라당을 보여주려 했으나
오세훈이 핵폭탄을 집어던지고
선관의 디도스 테러 사건이 터지며
한나라당 홍준표 지도부는 1년도 못 가 붕괴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유승민을 필두로, 당 내 최고위원들이 동반 사퇴하면서
홍준표 지도부는 붕괴당한다. (이준석, 한동훈이 당한 그거 맞음)
당시 유승민은 당을 박근혜에게 넘기고 박근혜의 얼굴로 총선을 치뤄야지
한나라당이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박근혜는 이런 유승민을 극구 말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시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도저히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야심차게 출발한 한나라당 개혁지도부는 붕괴당하고 만다.
그리고 이 전당대회는 보수정당 네임드들이 총출동한 전당대회였으나
이들의 끝은 매우 비참했고
출마한 모든 이들이 정치적으로 크나큰 몰락을 겪는다.
홍준표는 대표직에서 반강제적으로 끌어내려 앉혀졌고, 이후 19대 총선에서 패배했다.
유승민은 박근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비대위를 주장하며 지도부를 붕괴시켰고, 이로 인해 박근혜에게 찍혔고
당명 개정과 관련하여 박근혜와 맞서면서 완전한 결별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 결별은 정치인 유승민의
고난의 씨앗이 되었다.
나경원은 오세훈의 사퇴로 인해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했으나 온갖 네거티브 폭탄을 맞고 정치적으로 몰락했으며
원희룡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했으나 나경원에게 패배하면서 야인이 되었다.
남경필은 모두가 알다싶이 아들문제로 정계에서 은퇴했고,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출마했던 권영세, 박진의 경우
두 번 내리 낙선 또는 낙천하면서 정치적으로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이렇게 몰락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정계를 은퇴한 남경필을 제외하고는
모두 화려하게 복귀하여
지금도 보수정당의 핵심세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새로운보수당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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