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버텨낸…” 두산이 재계의 최고 생존자로 불리는 진짜 이유
두산그룹 재계 서열 17위
1896년 설립 역사만 100여 년
최근 구조 재편에 주주 성토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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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에 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철회한 뒤 신성장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는 두산이 지난 6일 역대 신고가를 경신한 것으로 알려져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특히 두산은 국내 대기업 중 가장 오래된 역사가 있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두산그룹이 재계의 최고 생존자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한말 당시인 1896년 박승직 창업주가 세운 ‘박승직 상점’을 모태로 두는 두산은 현존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꼽힌다. 다만, 현재의 두산은 존속법인이 다를뿐더러 중간에 업종 변경이 있다는 이유로 정통성 측면에서 동화약품이 국내서 가장 오래된 기업집단이라는 시각이 나오기도 한다.
포목점으로 시작한 두산은 박승직의 넓은 안목으로 그룹의 사세를 키워왔다. 박승직 창업주는 1925년 작은 상점으로 시작했던 박승직 상점을 주식회사로 개편했으며 약 8년 뒤 쇼와 기린 맥주 대리점을 운영했다. 광복 이후 박승직 상점이 문을 닫기도 했으나 그의 아들인 박두병이 두산 상회를 세워 그룹의 명맥을 이어 나갔다.
이후 1952년 후신인 동양 맥주를 정부로부터 귀속재산 불하받아 현재 두산의 모태로 불리는 OB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출범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당시 두산그룹의 사명이 OB 그룹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OB 브랜드가 두산의 핵심 사업군으로 자리 잡았던 사실을 알 수 있다.
1969년 박두병 동양 맥주 사장이 회장으로 선임되면서 전문경영인 체재를 밟기 시작한 두산그룹은 1977년 정수창 사장이 그룹 회장직에 오르며 국내 최초로 전문경영인 출신 총수 시대의 포문을 열기도 했다. 다만, 1981년 박용곤이 회장에 선임되면서 3세 경영체제를 확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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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기술소재사업, 정보유통 사업, 생활 문화 사업 등 경공업 위주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유했던 두산은 사실상 소비재 기업에 가까웠던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1991년을 기점으로 두산은 현재의 중공업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그룹의 사세를 키웠다.
1991년이 두산의 사업 구조를 바꾼 기점으로 기록되는 것은 이 시기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사건으로 인해 두산은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되었으며, 당시 운영하던 OB맥주를 잃게 됐다. 이는 같은 계열사인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으로 인해 기업에 좋지 않은 이미지가 쓰인 데다가 경쟁사인 크라운맥주가 이를 겨냥해 천연암반수 이미지를 강조한 하이트를 출시하면서 시장 1위 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특히 1996년 회장으로 취임한 박용오가 OB맥주를 비롯해 코카콜라, 버거킹, 3M 등의 계열사를 매각 혹은 사업 철수를 통해 구조조정을 하여 소비재 산업에서 떠났다. 이에 두산그룹은 2000년대에 접어들며 인수합병과 비주력 사업 부문의 매각을 통해 현재의 중공업, 플랜트 건설 기업으로 변모했다.
이 시기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두산은 돈 되는 주력 기업들, 국내에서 영위하던 해외 프랜차이즈 식당 기업들과 종갓집 김치까지 몽땅 비싸게 팔아넘기며 자본을 쌓았다. 이후 2001년 두산에너빌리티(구 한국중공업)를 인수하며 에너지 인프라 사업에 진출했으며, 2007년 미국 잉거솔랜드의 소형 중장비 부문을 인수해 두산밥캣을 출범시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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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당시 밥캣의 인수로 인해 그룹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등 위기를 겪기도 했다. 재계에서 두산그룹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변신의 귀재’로 통한다. 이는 그룹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주력 사업을 재편해 기회로 활용하는데 두산그룹이 특출나기 때문이다.
밥캣의 인수로 인한 위기와 함께 두산건설의 PF 부실이 촉발됐으며 면세점 사업 역시 두산의 위기로 작용했다.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낸 두산은 현재까지 129년의 역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한편, 지난해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에 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한 두산은 현재 신성장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를 합병하는 개편에서 매년 1조 원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는 핵심 자회사 두산밥캣을 잃게 되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반발이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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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적자 기업으로 꼽히는 두산로보틱스와 알짜 기업으로 꼽히는 두산밥캣의 합병 비율을 두고 내내 잡음이 발생한 바 있다. 이에 금융감독원이 분할합병과 주식의 포괄적 교환을 위한 증권신고서에 대해 2차례의 정정 요청을 하는 등의 일이 발생하자 결국 두산은 합병 철회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두산그룹이 사업 구조 재편을 포기하지 않고 한 차례 더 합병안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논란이 끊이지 않자, 현재는 끝내 사업 재편을 포기하고 신성장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두산의 사업 재편 백지화가 무색하게도 지난 6일 전일 대비 1.73% 상승한 29만 4,500원에 거래를 마치면서 신고가를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하여 증권가에서 두산의 목표주가를 일제히 상향 조정하는 등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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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김장원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계열사 분할합병 무산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며 두산의 가치는 전자BG를 중심으로 한 자체 사업에 있다”며 “계열사 분할합병을 재거론하기는 어렵겠으나 두산로보틱스는 협동 로봇 사업 확장으로 지분가치 상승 및 활용의 가능성이 있어 두산 가치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6월 두산그룹의 자산 총액이 29조 3,745억 원으로 집계돼 재계 17위의 위상을 자랑한 가운데 향후 두산그룹이 신사업 재편을 통해 ‘재계 10위로 도약하겠다’라는 포부를 지켜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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