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현금 없는 사회’ 현상에 벼랑 끝 몰린 사업, 해결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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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8

동전, 지폐 등으로 굿즈화 사업
위변조 방지 기술 활용 사업영역 확장
지하벙커는 예술품 수장고로

우리나라에서 현금 사용은 빠르게 사양 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2015년부터 3년마다 실시하는 ‘경제 주체별 현금 사용 행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가구당 월평균 현금 지출액은 51만 원으로, 2018년 결과인 64만 원보다 25.4% 줄었다.

전체 지출액 중 현금의 비중은 2015년 38.8%, 2018년 32.1%에서 2021년 21.6%로 낮아졌지만, 신용·체크카드는 2015년 37.4%, 2018년 52.0%, 2021년 58.3%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이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카드와 온라인 결제가 확산하면서 자연스럽게 현금 결제가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디지털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부와 기업의 정책, 간편 결제 기술 발전도 흐름에 힘을 보태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금 없는 사회’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게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이다. 월드페이의 ‘2024 글로벌 결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세계 현금거래(POS 결제 기준)의 비중은 전체의 16%로 약 6.1조 달러 규모였다. 2027년에는 11%로 더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실제 중국은 이미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의 등장으로 현금이나 실물 카드 대신 간편 결제 서비스가 주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호주에서도 현금 거래 비중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07년 70%에 달했던 현금 거래 비율은 16년 만에 13%대로 축소됐다. 이 속도라면 2030년에는 ‘전면 현금 없는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될 정도다.

한국조폐공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0년 전에 비해 지폐 생산량은 절반으로 감소했다. 동전 생산량은 92% 줄었다. 100개 만들던 것을 8개만 생산하는 꼴이다. 이 때문에 조폐공사의 매출에서 화폐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줄었다. 현재 한국조폐공사가 화폐 생산으로 벌어들이는 매출 비중은 24%에 불과하다.

조폐공사의 일거리는 여권, 주민등록증 등 전통적인 수주형 사업에 몰려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전통적 수주형 사업 가운데 여권, 주민등록증 사업이 잘되는데 은행권 사업은 다소 그렇다”라고 말했다.

이에 조폐공사는 ‘화폐 없는 사회’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여러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최근에는 500톤가량 발생한 화폐 부산물을 소각하는 대신 이를 이용해 굿즈형 상품을 만들었다. 한국조폐공사는 ‘머니메이드(MONEYMADE)’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불리온 메달’이라고 불리는 예술형 주화도 한국조폐공사가 제시한 돌파구 중 하나다. 실제 국가 상징물을 소재로 발행하는 기념주화인 ‘예술형 주화(bullion coin)’ 산업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시장 규모는 19조 8,620억 원으로 2019년 7조 원의 세 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영국, 호주 등 6개국에서는 예술형 주화를 이미 발행 중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예술형 주화는 ‘메달’이 아닌 ‘통화’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한국은행과 협의가 필요하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현재 사업 진행을 위한 법적 검토는 완료됐고, 발권 당국인 한국은행의 승인만 남아있는 상태다.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화폐 사용이 감소한 만큼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라며 “조폐가 하나의 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최근 경북 경산에 있는 조폐공사 화폐본부 지하 벙커도 예술품 창고로 용도가 변경될 전망이다. 최근 국립한글박물관 화재로 유물 보관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며 부족한 예술품 수장고 현황이 지적됐다. 이에 공사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측과 2차례 실사를 통해 소장품에 대한 수장고 활용 방안을 논의했다.

이곳 지하 벙커는 강력한 보안 시스템과 견고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쉬운 환경 덕분에 미술품 보관에도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조폐공사의 벙커를 사용하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시설을 짓는 것보다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해당 시설은 전시에 대비해 비상시 화폐를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1975년 준공됐지만, 사용이 중지되면서 방치되다시피 한 공간이다. 우진구 한국조폐공사 홍보실장은 “종이 화폐가 축소되고 있는 현실에서 지하 벙커 수장고 활용은 귀중한 대안일 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현금 없는 사회의 부작용으로 인해 디지털 소외 계층의 불편감도 우려되는 가운데 ‘화폐 사용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현금 결제 선택권’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은 “현금 없는 사회로의 진행 과정에서 문제가 나타나지 않도록 미리 대응책 마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며 “모든 국민이 화폐 사용에 어떠한 불편도 초래해서는 안 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성창훈 한국조폐공사 사장 또한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미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는 해외 주요국의 사례를 들며 “국민의 현금 사용 선택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화폐의 본원적 역할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라면서 “현금 사용을 원하는 국민의 지불수단이 제약되지 않도록 공적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전했다.